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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붉은 간판 없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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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붉은 간판 없애기

입력
1999.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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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사는 유명 서예가로부터 『내 소망은 수원의 모든 간판을 붓글씨체로 바꾸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아름다운 화성(華城)과 정조(正祖)의 효성어린 자취가 남아 있는 수원에는 붓글씨체 간판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글씨로 한 도시를 뒤덮고 싶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끔찍하게 느껴지면서도, 도시에 난립한 간판들을 생각하면 더욱 끔찍해서 그 말이 이해되는 면도 있었다.■중국 일본 등의 도시에는 붓글씨체 간판이 많은데, 한국에는 디자인 글씨체 간판이 대부분이다. 간판이 붓글씨체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절의 일주문과 대웅전 현판 정도일 것이다. 굳이 붓글씨체를 권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건축문화의 해」에 꼭 개선됐으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간판문화다. 우리 도시의 간판들은 대부분 뻔뻔스럽도록 크고 무질서하고 천박하고 색의 조화도 맞지 않는다. 그것은 문화가 아니라,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아우성이다.

■최근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서울시는 빨간색 간판을 금지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빨간색 등 원색사용과 크기 등을 대폭 규제한다니, 도시가 한결 정결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이런 원칙을 지키고 있는 곳도 있다. 종로구 인사동은 몇년전부터 주민이 간판을 자율규제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거리」 다운 품격을 지키려 하고 있다.

■무분별한 간판의 범람에 정치인들도 한 몫을 거들고 있어 딱하고 민망하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국회의원 ○○○ 사무실」 「□□□ 지구당 위원장 사무실」등의 글씨가 나타난다. 글씨들은 대문짝 만하게 커서 미학적 고려와는 거리가 멀다. 주민 정서와는 아랑곳없이 큰 간판으로 몇년이고 선거운동을 할 요량인 것 같다. 정치인부터 간판을 줄여서 새로운 건축문화를 이끌었으면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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