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파 김홍집내각이 「단발령(斷髮令)」을 내린 것은 104년전인 고종32년의 일이었다. 상투를 자를 수는 없다는 유생(儒生)들이 의병까지 일으키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때 유생들이 내세운 명분은 유교 고전의 하나인 「효경(孝經)」의 한 귀절이었다.『신체발부(身體髮膚·몸 머리카락 살갗)는 부모에게서 받았으니 감히 다치게(毁傷·훼상)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귀절이었다.
학교에서 국사시간에 누구나 한 두번은 들었을 만큼 유명한 귀절이다. 하지만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춘추전국시대까지 고대 중국에서는 형벌에 두 가지가 있었다. 중죄인을 죽이는 사형이 있고, 죄인의 몸에 칼을 대는 소위 「육형(肉刑)」이 있었다.
육형은 죄인의 얼굴에 문신(文身)을 해서 죄인임을 표시하는 글을 새기거나, 코나 다리, 남녀의 성기(性器)를 못쓰게 만드는 네 가지가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몸은 어버이의 가지(枝)이니 감히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일렀다. 결국 몸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말은 『죄를 지어 얼굴에 죄인이라는 글이 새겨지거나, 코·다리·성기능을 잃지 말라』는 경고다.
그것을 100여년전 이 나라의 유생들은 상투를 자를 수 없는 근거로 내세웠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잘못 알고 있다.
이처럼 상투를 자를 수 없다고 의병까지 일으킨 게 엊그제 일인데, 최근엔 멀쩡한 손·발을 자르는 끔찍스런 일들이 줄잇고 있다. 끼니 잇기도 어려웠던 아버지가 열살배기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보험금을 타자는 것이었다.
석달뒤인 작년 12월에는 증권투자와 노름으로 재산을 탕진한 사람이 자기의 두 발목을 잘랐다. 듣기에도 소름끼치는 사건은 올들어서도 이어졌다. 모두 지난 2월에 있었던 일이다. 택시운전사가 두 발목을 잘랐고 네 손가락을 자른 사람도 있었다. 이 끔찍스런 손·발 절단사건들은 모두 계획적으로 상해보험에 들어놓고, 『강도에게 당했다』고 거짓말을 한 자해극(自害劇)이었다.
이들은 부모가 주고, 하늘이 주고, 신(神)이 준 몸을 돈과 바꾸기를 원했다. 보험금을 타내는데 성공했건 실패했건, 이들은 지금 틀림없이 돈과 바꿀 수 없는 「신체발부」를 스스로 절단한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돈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과 줄 수 없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약과다. 재벌 아버지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훔쳐간 엽기적인 사건까지 터졌다. 정말 『보석을 꺼내려고』 무덤을 도굴했는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원한때문이었는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그 어느 쪽이건 이 땅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은 사막에서 물 한모금 얻기보다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70년대 이래 땅투기로 돈벼락을 맞은 신흥부자들이 거들먹거리는 나라, 80년대 정치군인이 수많은 주권자를 학살하고 단군이래 최악의 부정축재를 일삼고도 사면·복권된 나라, 밑천보다 빚이 많은 빈털터리에게 은행돈을 퍼부은 정·경유착의 나라, 황제처럼 군림하는 재벌들의 비자금 복마전이 활개쳐온 나라, 군사통치시대 기득권 세력의 유산상속자들이 갑자기 「민주투사」로 행세하고 있는 나라가 이 나라다.
제 몸을 절단해서라도 돈을 얻겠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왕릉 부럽지 않게 꾸민 호화분묘 속에 억만금이 들어 있을 것이라는 도굴꾼의 착각을 뿌리뽑기도 어려울 것이다.
거덜난 경제는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믿음과 정의와 꿈을 잃은 정신적 파산, 그리고 의지할 곳 없는 자에게 최종적 피난처가 돼주는 공동체의 붕괴야말로 가장 끔찍스런 위기다.
/鄭璟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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