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와 선친이 모두 의병과 독립운동가로 헌신했는데 내가 학도병으로 끌려가 일본군 장교를 지냈다는 사실을 그동안 차마 밝힐 수 없었다』 국무총리를 지냈던 현승종씨는 최근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경성대를 조기졸업한후 44년초 학도병에 강제징집됐으며, 해방되던 날 장교로서 중국 팔로군과 교전했다고 말했다. 자발적인 행동은 아니었으나 일제 군복을 입고 중국 팔로군에게 총을 겨눴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니 부끄럽게 생각해 왔다는 고백이다.■친일파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방이후 각계에서 지도자로 행세했거나 아직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얼마전 항일운동으로 건국훈장을 받은 인사들을 안치한 현충원(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5명의 친일인사가 묻혀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일부에서는 『일제치하에서 사회지도층의 친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며 반박하기도 한다.
■프랑스는 4년간의 나치 점령기를 청산하기 위해 4만명을 처단하고 99만명을 처벌했다. 36년간의 식민역사를 가진 우리는 어땠는가. 친일파·민족반역자 처단을 위해 48년 9월 발족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는 친일파의 방해로 221명을 기소하고 1년만에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은 일제 고등경찰 출신의 김덕기 뿐 이었는데 그도 6·25직전 감형으로 풀려났다. 결국 반민법으로 처단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올해 3·1운동 80주년을 맞아 기념탑을 세우는 등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가 많았다. 하지만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은 수치스러운 역사의 청산이 아닐까. 이제는 역사적 실체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잊지는 말아야 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망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세계화할수록 민족의 중요성은 커진다. 현승종총리의 고백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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