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럴당 5달러' 되면 중동국가들만 살아남아 -9일 새벽 외신들은 일제히 런던발 국제원유가 동향을 급전으로 타전했다. 이날 런던 국제석유시장에서 북해산 브랜트유의 가격이 배럴당 12달러를 넘어서 4개월여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뉴스였다.
이날의 원유가 급등은 바로 전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석유장관이 만나 원유가 안정 방안을 논의했다는 소식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석유전문가들은 이날의 급등을 의외라고 분석했지만 최근 원유가 상승을 견인한 요인들을 감안하면 이날의 상승폭은 오히려 적은 것이었다. 석유업계에서는 국제 유가동향을 둘러싼 전망과 논란이 한창이다.
◆최근 유가동향 : 미정부는 지난달 2,800만배럴의 전략비축원유를 신규 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이라크의 수출용 원유를 절반이상 수송하는 파이프라인이 미군기의 폭격으로 4일까지 가동이 중단됐다.
더구나 올겨울 서유럽과 북미지역에는 라니냐의 영향으로 수십년만의 한파가 덮쳐 석유소비가 크게 늘었다. 23일에는 세계 석유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가 안정의 열쇠가 될 감산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사상 초유의 배럴당 10달러선 아래로 폭락, 한자리 숫자를 기록하기도 했던 원유가는 이같은 요인들을 반영, 지난달말부터 반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년전에 비하면 여전히 절반수준이다. 특히 구매력 기준으로는 현재의 배럴당 10달러 안팎의 원유가는 70년대초와 같다는 분석이다.
◆저유가의 원인 : 원유가의 하락행진은 공급과잉에서 비롯됐다. 특히 세계 원유매장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중동 산유국들이 유가하락을 증산으로 만회하려 하면서 유가하락과 증산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OPEC의 작년도 석유생산 수입은 80년도에 비해 5분의 1로 줄었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재정적자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0%, 대외채무는 GDP의 100%로 불어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배럴당 2달러에 불과한 낮은 원유 생산비용을 무기로 비OPEC 국가들의 원유생산을 사실상 봉쇄하는 전략을 취해왔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제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이란과 이라크는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해 원유생산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라크는 지난주 1,86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유가 폭락의 여파로 미국내 원유생산량은 이미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생산비용이 배럴당 11달러에 달하는 북해산 브랜트유는 한자리수의 국제원유가가 지속된다면 생산중단이 불가피하다. 배럴당 5달러의 초저유가도 가능하다는 예상은 곧 중동 산유국이 사실상 세계 원유생산량의 100%를 차지한다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초저유가의 끝은 : 영국에서 발행되는 시사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3월6일자)는 국제 원유가의 초저가 행진이 세계경제에 득보다 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석유전문가들은 특히 원유가가 배럴당 5달러선까지 떨어질 경우 3~5년후 제4차 오일쇼크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동산유국들은 초저유가 전쟁의 최종 승자로 등장, 73년 제1차 오일쇼크 직전때와 같은 막강한 힘으로 세계석유시장의 판도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79년 이란혁명 이후 제2차 오일쇼크가 몰아쳤던 것처럼 현재 후계구도조차 불투명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초저유가의 악순환으로 자멸할 경우 세계석유시장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박정태기자 jtpark@ 김정곤기자 kimjk@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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