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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서울시 방호원 이관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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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서울시 방호원 이관희씨

입력
1999.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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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일본의 본자를 본떠 지었다는 잿빛 석조 건물, 두 길이 넘는 높이의 육중한 나무대문. 입구서부터 「관공서의 벽」을 느끼게 하는 서울시 청사의 모습이다. 이런 겉모습에 더해 위압감마저 주던 방호원들의 굳은 표정이 언제부턴가 환한 웃음으로 바뀌면서 시청사의 분위기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방호원들이 이름그대로 「경비」에서 친절한 「길잡이」로 탈바꿈하기까지는 청년 방호원 이관희(30)씨의 숨은 노력이 큰 몫을 했다.

97년 5월 방호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스스로도 답답해 미칠 것 같던 딱딱한 청사 분위기를 바꿔보기로 작정하고, 일 보러온 시민이든, 시 직원이든, 동료든 보는 사람마다 닥치는대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인사를 받아주기는 커녕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그러기를 6개월여, 사직서까지 써놓고 오기에 받쳐 인사를 해대는 「미친 짓」에 메아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시장님부터 아르바이트 학생,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까지 모두 반갑게 인사를 받아줍니다. 하루 5시간씩 2,000번 넘게 인사를 하려면 온 몸이 굳어질 정도로 힘들지만, 정문에만 서면 신바람이 납니다』

그런 노력으로 「미스터 스마일」이란 애칭도 얻었다. 그를 닮아 표정을 바꾼 방호원 사이에서 그가 여전히 돋보이는 이유는 또 있다. 우렁찬 목소리로 건네는 인삿말. 「신나는 월요일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등 레퍼토리도 다양해 듣는 이를 절로 웃음짓게 하는 매력이 있다.

햇살같은 웃음을 샘솟게 하는 원천은 무엇일까. 그의 답은 역설적이게도 지독한 가난과 뒤틀린 가족사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웃고, 따뜻한 정을 나눌 사람이 그리워서 웃는다』고 그는 말한다.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와 집 나간 어머니, 스스로 목을 맨 큰 형 탓에 13세때부터 생계는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다.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한 뒤 신문배달, 구두공장 시다, 다방 웨이터, 막노동 등 안해본 일이 없었다. 가난하고 못배운 놈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부모의 반대로 3년간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뒤에는 무작정 고기잡이 배를 타기도 했다.

오랜 방황끝에 어렵게 얻은 방호원일. 시청 직원이라니 반기다가도 경비라는걸 알고는 매몰차게 떠나버린 여자들도 있었지만, 그는 이 일이 마냥 좋단다.

『시청 정문앞에 서면 세상이 내 것 같아요. 저의 작은 도움에 민원인들이 고마움을 표하고 어깨를 늘어뜨린 직원들이 인사 한마디에 굳은 표정을 풀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그는 꿈이 많다. 연세대앞 독수리다방 웨이터시절부터 습작해온 시들로 지난해부터 일간지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5년쯤 뒤에는 서울 근교에 오가는 길손들과 차 한잔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아담한 전통찻집을 낼 생각이다. 하지만 꿈이 이뤄지더라도 지금의 일을 그만두지 않기로 했다.

『찻집 경영은 미래의 아내에게 맡기고, 틈틈이 시를 쓰며 시민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시청 문지기로 늙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이희정기자 jay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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