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의 과학적 분석결과가 불과 며칠새 뒤바뀌었다면. 더구나 그럴듯한 근거도 없이 덜컥 이뤄졌다면.21세기를 향한 국가의 새틀을 짜는 정부조직개편안(공청회시안)을 들여다보면 이런 석연치 않은 구석이 수없이 발견된다. 예산편성권과 경제정책조정권의 부처간 배분문제이 대표적 사례다.
4개월에 걸친 정밀경영진단을 통해 마련된 민간컨설팅기관의 보고서 원안을 보면 예산편성권과 정책조정권은 통합하되 그 권한은 기획예산부(구 기획예산위원회)와 재정경제부중 하나로 선택토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영진단조정위원회의 공청회 시안에는 재경부에겐 예산편성권과 정책조정권을 함께 주지만 기획예산부로 넘길 경우엔 예산편성권만 준다고 되어 있다. 불과 하루만에 경제부처간 역학관계와 위상의 골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진념(陳稔)기획예산위원장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진위원장의 대답.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직접 얘기했다. 기획예산위가 정부조직개편 주무부처인데 예산권과 정책조정권까지 갖겠다고 나선다면 타 부처에서 뭐라고 하겠는가』
얼핏 들어보면 「내 밥그릇을 버리겠다」는, 공직자로선 보기드문 「무욕(無慾)」의 극치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것일까. 행여 「타부처로부터 욕을 먹고싶지 않다」는 생각은 아닌지. 또 예산편성권을 놓고 재경부와 기획예산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떡을 하나(정책조정권) 양보하는 것처럼 하면서 알짜(예산편성권)를 챙기려는 것은 아닌지 의아스럽다.
진위원장의 이같은 입장은 국민생활과 직결된 정부조직개편과정에서 특정부처가 자기이익을 챙기려는 투정으로 비춰지고 있다. 역사상 처음 이뤄진 민간경영진단결과는 그 취지가 존중되어야 한다.
이성철기자 경제부기자 sc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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