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격호(辛格浩·77)회장 부친인 신진수(辛鎭洙·73년 작고)씨의 묘소가 파헤쳐지고 유골이 사라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경찰은 5일 오전 롯데그룹 회장 비서실에 8억원을 요구하며 협박전화를 걸어온 40대 남자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전화발신지 추적에 나서 대전에 수사대를 급파했지만 검거에 실패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발신지 추적을 눈치채고 5분 간격으로 공중전화를 옮겨가며 협박전화를 걸어온데다 현장 주변에 전혀 지문을 남기지 않는 점 등으로 미루어 치밀한 계획에 의한 범행으로 보고 추적중이다.
발생
4일 오전 8시35분께 『울산에 사는 최선생』이라고 밝힌 40대 남자가 서울 소공동 롯데빌딩 26층 회장 비서실로전화를 걸어와 『신격호회장 부친의 묘소를 확인해보라』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직후 롯데그룹 관계자들이 신회장의 선산인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구수리 충골산으로 내려가 신씨의 묘소가 도굴되고 유골이 없어진 사실을 확인했다.
범인은 같은날 오후 4시35분과 4시40분께 다시 전화를 걸어 『묘소를 확인했느냐』고 묻고 『신회장의 울주 큰어머니 묘소위치 등 신회장에 대한 모든 자료를 파악하고 있으니 경찰과 언론에 알리지 말라. 어떤 조치가 있으면 다른 일을 강행하겠다.』고 협박한 뒤 전화를 끊었다.
검거실패
5일 오전 11시8분께 범인이 회장비서실로 전화를 걸어 『신회장 부친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다. 돌려받으려면 현금 8억원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이 남자는 5분후 다시 전화를 걸어 『오늘밤 준비한 돈을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경부고속도로로 나오면 만날 장소를 지정해주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경찰은 발신지 추적작업에 나서 대전 대덕구 중리동 S횟집과 A문구사 앞 공중전화에서 전화가 걸려온 사실을 확인하고 중리파출소 소속 경찰관들을 출동시켰으나 검거에 실패했다.
수사
경찰은 훼손된 묘지 주변에서 곡괭이 1개와 쇠로 만든 관 뚜껑을 열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장도리 2개를 발견했으며 현장에서 지문채취 등 정밀감식 작업을 벌였으나 지문채취에 실패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이 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는지 전혀 지문이 남아있지 않다. 철제 관을 뜯어낸 것으로 보아 특수장비를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이 돈을 요구한 점으로 미루어 금품을 노린 단순범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으나 롯데그룹이 최근 유통부문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왔다는 점에서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특히 현장에서 장도리 2개가 발견된데다 롯데그룹과 통화과정에서 범인 스스로 『우리 애들이 있다』고 밝힌 점으로 미뤄 최소한 2명 이상이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
충골산 중턱에 있는 신회장 부친의 묘소는 완전히 파헤쳐진 채 일부 유골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울산 태화강 줄기가 바라보이는 300평 정도 규모의 묘소에는 신 회장의 부모가 함께 모셔져 있으며, 이중 오른쪽에 부친 신씨의 묘가 있다.
부친 묘는 깊이 2m 가량까지 파헤쳐졌고, 길이 3m, 너비 1m의 철제관도 윗부분 절반정도가 뜯어져 있었다. 무덤 주변에는 파낸 흙과 철제관을 둘러싸고 있던 길이 1.5m, 너비 30㎝ 크기의 나무판 10여개가 흩어져 있었다.
유골은 많이 도굴당했으나 하반신 유골의 상당부분이 발견됐고 색이 바랜 수의가 썩지 않은채 있었다.
유골은 3일 밤과 4일 새벽 사이에 파헤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범인도 4일 롯데그룹측과 통화과정에서 『3일 저녁에 작업을 시작해서 오늘 아침에 바로 연락했다』고 말했다.
박천호기자 chpark@hankookilbo.co.kr 김홍준기자 hongali@hankookilb0.co.kr
>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