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저녁 북한 장전항에 정박한 유람선상에서 열린 「금강산 통일토론회」를 라디오 생방송으로 들었다. 기독교 방송과 기독교 교회협의회가 마련한 토론회에는 리영희교수와 홍사덕의원 등이 패널로 나와, 금강산에 올랐던 기독교인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모두 직접 목격한 북한 땅의 참담한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북한 지원에 인색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 사회의 용렬함을 개탄하는 발언을 봇물처럼 쏟아 놓았다.■『우리가 맛있는 삼겹살을 먹기위해 해마다 옥수수 600만톤을 사료로 수입하는 옆에서 북한은 옥수수 200만톤을 얻지 못해 몇백만명이 굶어 죽었다』, 『보수언론은 북한에 식량을 주면 군량미가 된다고 경고하지만, 군인들도 굶주리는 판에 군량미로 좀 쓰면 어떠냐』는 등의 발언이 이어졌다. 한국 교회가 국제 연대를 통해 식량 70억원어치를 지원했다는 교회 관계자의 발언도 『1,000만 기독교인들이 과연 할 일을 다했느냐』는 지적에는 빛을 잃었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이 몇 있었다. 홍사덕의원이 「북한동포를 사랑해야 할 의무」를 강조하자, 한 감리교 여목사는 『정치인들이 실상을 가리고, 동포를 돕는 것을 반공논리로 막지 않았느냐』고 통박했다. 어느 농민은 북한주민들의 초췌하고 남루한 행색을 들어 『우리 옷차림이 너무 화려하다』고 부끄러워했다. 수십가지 음식을 차린 뷔페를 먹고, 장전항 전체보다 많은 전깃불을 밝힌 유람선에서 이런 토론을 하는 아이러니를 상기시키는 발언도 있었다.
■간곡한 동포애가 담긴 발언들은 반세기만에 겨우 빗장이 풀려 북한 땅을 둘러보는 것을 「관광」으로 부르는 것이 거슬리던 마음에 위안이 됐다. 분단시절 서독인들은 갖가지 명목으로 막대한 금액의 마르크화를 동독측에 건네주고 장벽 너머 동독지역을 찾았다. 『동독 주민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그들을 잊지 않는다는 연대의식을 전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일찍부터 있었다. 금강산의 얼음과 남쪽 경기가 함께 풀리면 부쩍 늘어날 「금강산 관광객」들이 남과 북의 처지를 두루 헤아리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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