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처방에도 불구하고 불황의 늪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일본경제 회생의 마지막 주사위가 조용히 던져지고 있다.일본은행은 2일부터 연일 긴급자금을 방출, 인하 유도대상인 무담보 1일물 콜금리를 끌어 내리고 있다. 이에 따라 1일물 콜금리는 4일 한때 연 0.01% 수준까지 떨어져 수수료를 뺀 실질금리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일본은행은 1일물 콜금리 유도목표인 「실질금리 0%」가 정착됨에 따라 대상을 7일물과 90일물로 옮겨 꾸준히 금리인하를 유도할 움직임이다.
일본은행의 적극적 금리정책은 현재 연 1.6%대인 장기금리를 더욱 끌어내리기 위한 것. 기업의 설비투자 의욕을 부추기기 위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엔화 약세를 유도, 수출기업을 지원하려는 노림수이다. 실제로 1일 달러당 119.10엔이었던 엔화는 4일 한때 122.40엔까지 떨어지는 등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의 금리정책 뿐이 아니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대장성 장관은 2일 『연 2%대의 경제성장을 몇년간 지속한 뒤에 금융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성장 우선정책으로의 전환을 분명히 했다. 일본 경제운용 기조가 구조조정에서 성장우선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일본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에서 일본경제 회생의 유일한 처방전으로 내놓았던 「조정 인플레」, 즉 통제가능한 인플레 정책으로 돌아섰음을 보여 준다.
드러내놓고 밝히지 못할 뿐 그동안 대규모 감세와 공공투자를 통한 내수확대로 경기회복을 꾀해 온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다. 감세와 공공투자로 국민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대부분 시장에 나오지 않고 은행과 장롱속에서 잠잔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일본 경제를 떠받쳐 온 수출을 증대, 성장의 기관차로 삼고 이를 위해 엔화를 적극 방출, 인플레를 유도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져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엔화의 지나친 약세가 중국 위안(元)화의 평가절하를 불러 아시아 경제를 다시 위기에 빠뜨릴 소지는 상존한다. 또 미국이 언제까지 대일 무역역조를 견딜지도 의문이다. 금리정책도 이미 운용폭이 극히 좁아졌다.
확률이 반반인 주사위를 던지고 있는 일본의 고민이 그래서 깊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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