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켤레에 400만원짜리 여성용 이탈리아제 「신데렐라 구두」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졸업이나 군 입대 파티등으로 부유층 자녀들이 흥청망청 돈을 뿌리고, 골프용구 승용차 보석등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IMF체제 진입 후 1년여가 지나 이제 겨우 긴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마치 터널을 벗어난 것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과소비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지난달 통계를 보면 실업자 176만명, 주당 근로시간 18시간 미만인 준실업자 69만명, 일시휴직자 46만명등 실업고통인구가 300만명에 육박했고, 앞으로 실업률은 더 높아질 전망인데 한편에서는 IMF체제 이전보다 더 심한 사치풍조가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소비가 살아나야 경기가 회복된다.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고 있지만 전후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보듯 경기를 받치는 것은 국내소비다. 하지만 최근 우리의 소비행태는 지나치게 분수를 넘어서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IMF체제를 오히려 즐기는듯한 「이대로 족(族)」이 갈수록 늘고 있다.
금리를 내리면 시중자금이 생산현장에 투입되어야 하는데 정반대로 소비증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퇴직금이나 연금생활자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져서 이들은 2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금리를 내리고 투자를 늘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던 정부의 정책은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통계수치만을 들먹이며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야당총재도 인정했듯 정부는 지금까지 어려운 경제난을 잘 풀어 왔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이같은 국내외 칭찬에 스스로 도취돼 긴장의 끈을 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근거가 약하거나 아직 때가 이를 경우 막연한 희망은 난관돌파에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관리들의 잇따른 「경기저점 통과론」 「낙관론」을 우려하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과소비를 일부 부유층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고위층뿐 아니라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느슨해지고, 정부가 그러한 분위기를 앞당겨 조성한 책임도 있다. 그 결과 계층간 위화감과 불신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다시 위기가 닥친다면 지난번처럼 국민들이 금반지를 내놓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어려울 때일수록 모범을 보이는 것은 지도층의 의무다. 정부부터 다시 신발끈을 매야 한다. 저점 통과 이야기는 경기회복 후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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