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 게릴라」란 말이 자유로운 활동범위와 상상력을 가진 문화인들을 뜻하는 일반개념 같이 쓰이고 있지만, 이 용어가 우리 문화계에서 최초로 트레이드마크처럼 쓰여진 사람이 이윤택(47)씨다.첫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가 참담한 패배를 맛본 후 서적외판원, 우체국 직원, 지방지 기자를 거쳐 부산에서 거리연극패 창단, 「오구_ 죽음의 형식」등으로 화려한 서울 입성, 이후 10여년간 한국 연극판을 뒤흔들며 TV 「성공시대」에도 인생이 소개된 입지전적 인물.
「문화 게릴라」는 바로 고(故) 기형도 시인이 거리연극패를 이끌고 서울서 첫 공연을 가졌던 이윤택을 일러 처음 쓴 말이었다. 지독한 경상도 사투리 뒤에 섬뜩하게 번쩍이는 눈, 적당히 멜빵을 걸친 팔자걸음 뒤에서 솟아나는 아이디어가 영락없는 게릴라의 모습이다. 황지우 시인의 표현에 따르면 「문화의 사냥꾼, 눈앞의 먹이를 그 자리에서 해치우고 다른 영토로 떠나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양아치」가 이윤택이다.
이제는 본업이 된 연극 연출은 물론 시집도 몇 권 냈고, 문학평론집도 냈고, 시나리오와 TV드라마도 썼던 그가 이렇게 다채롭고 격정적인 삶을 살아오면서 겪은 뒤안의 이야기들을 쉽게쉽게 풀어낸 에세이집 「살아있는 동안은 날마다 축제」(샘터 발행)라는 책을 냈다. 제목처럼 매일매일이 페스티벌인 그의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날것으로 재미있는 글들이다. 문학청년기에 겪었던 생생한 체험, 지방연극쟁이가 공룡 같은 서울 풍토에 뿌리내리기까지의 에피소드들, 연극 「어머니」의 모델이 된 자신의 팔순 노모의 사연, 후배시인 장정일 하재봉의 기행, 김갑수 강수연 등 배우들과의 만남 등등.
이씨는 『독자의 삶을 움직인다는 식의 글쓰기의 위대성을 믿는 작가는 이제 없겠지만, 나의 독자들이 정신없이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뭔가 다른 일이 없을까」하는 마음이 들 때 가볍게 읽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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