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문학저널리스트로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다, 죽어서 한국 시와 문학청년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 기형도(1960~1989). 7일로 10주기가 되는 그의 문학세계를 정리한 「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이 나왔다.전집은 그의 사후 출간된 유일한 시집 「입 속의 검은 잎」과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5주기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에 수록된 시와 소설, 산문(여행기, 일기, 서평 등)을 전부 모았다. 특히 이번 전집에는 그의 미발표 시 「껍질」등 20편과 단편소설 「겨울의 끝」도 발굴돼 수록됐다.
소설가 함정임씨는 기형도 문학의 의미를 「80년대에서 90년대로의 전이를 온 몸으로 표징한 희귀한 시인」이었다고 한 적이 있다. 『세상은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채 두터운 안개 속에 쌓여 있었고, 80년대의 집단적 몸짓들은 광적인 요설과 배설로 이어지는 해체의 거대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기형도는 그 이면의 것들을 보고자 노력한 최초의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한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과 섞였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오후 4시의 희망」중에서).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중에서).
그는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란 구절처럼 삶의 어두운 이면을 이처럼 내면적으로 노래했다. 『기형도 시의 강렬한 내구력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시인을 습격했던 바로 그 죽음의 예감으로부터 온다』(문학평론가 박혜경).
이번에 발굴된 미공개 시편도 그 예감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지만 「꽃」같이 선명한 이미지와 정열의 시도 있다. 「내/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가슴 앓는 그대 정원에서/그대의/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꽃으로 설 것이다//그대라면/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짙은 입김으로/그대 가슴을 깁고//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꽃」전문). 그의 시들은 끊임없이 새롭고 다의적인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하종오기자
>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