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시장경제」국제회의는 「국민의 정부」경제철학, 즉 DJ노믹스가 경제위기 국가의 재도약모델, 나아가 개도국 전체의 새로운 발전모델로 국제적 공인을 시도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개도국 경제사회발전에 물적 지원과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세계은행(IBRD)이 이 행사를 주최했다는 점은 DJ노믹스가 이제 한국내 구조조정 차원을 넘어 학술적으로나, 현실정책으로나 하나의 「국제적 이슈」가 됐음을 뜻한다.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고, 따라서 빈곤퇴치와 산업화가 일정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 유보될 수 있다는 것이 종래의 시각. 70~80년대 우리나라의 고도압축성장은 그 대표적 성공사례였고 개도국 발전모델로 다른 나라에 전파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빈곤퇴치의 대가로 독재권력과 폐쇄·관치경제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변질되었고 결국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비(非)민주주의와 반(反)시장경제를 통한 고도성장모델을 제시했던 한국은 이제 아이로니컬하게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을 통한 또하나의 발전모델을 제시하게 된 셈이다.
이번 회의는 지난해 2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울펜슨 IBRD총재간 합의로 이뤄졌다. 노벨평화상수상자인 아리아스 전코스타리카대통령,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인 라모스 전대통령, 80년대 김대통령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곤살레스 전스페인총리, 빈곤의 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센교수등 참석자 면면을 보면 이번 회의가 단지 「취임 1주년파티」가 아닌 도덕적 가치에 무게를 둔 행사임을 알 수 있다. 김대통령도 『한국은 이제 인류평화와 번영에 공헌하는 도덕적 강국이 되겠다』고 천명했다.
이번 국제회의를 통해 한국에 대한 국제적 신뢰는 더 높아지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슬로건이 아니라 실천에 달려있다. 새로운 모델의 검증 대상이 된 만큼 전세계의 시선은 이제 한국으로 쏠리고 있다. 만약 구조개혁이 후퇴·지연되거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비민주·반시장적 방식으로 구축하려 한다면 「국제적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짐은 그만큼 더 무거워진 셈이다.
/이성철기자 sc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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