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도부(東武)백화점의 야마나카(山中○)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면서 『나는 경기 상승시대의 경영자로 이미 한물 간 사람이다. 20세기를 맡아온 사람들은 이제 물러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입사 50년 경력의 이 경영인은 한때 마쓰야(松屋)백화점을 맡아 재생시킨 수완가인데도 『시대의 변화를 좇아가기가 어렵다』고 실토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자퇴한 것이다.「20세기 사람은 물러날 때가 됐다.」
이 퇴임사는 바로 20세기의 퇴장사(退場辭)다. 20세기는 「20세기 사람」들과 함께 묻혀가고 있다. 한 세기의 위대한 업적으로도, 그 커다란 성과의 무거운 무게로도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떠밀리지 않을 수 없어 20세기는 퇴임하고 있다.
이 퇴임사는 하나의 양심선언이다. 자기 능력에 대한 반성이요 자기 위치에 대한 자책이다. 나는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가. 내가 있는 자리는 이 시대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가. 이것을 양심에 물은 것이요 그 양심의 가책을 시대 앞에 자백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스로 「20세기 사람」임을 자백하면서 사표를 던지는 양심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비단 한 회사의 경영자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모든 위치에 있는 개개인이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20세기 사람인가, 21세기 사람인가.
「20세기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구태의 사람은 20세기 사람이다. 구시대적 사고방식과 행동양태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20세기 사람이다. 아직도 흘러간 곡조에만 장단을 맞추는 사람들, 지난 시절의 악습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사람들, 시대의 변화에 둔감하거나 그 변화를 따라갈 재간이 없는 사람들. 20세기 사람은 반드시 연령이 경계짓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틀에 끼워보아서 맞지 않으면 아무리 젊어도 20세기 사람이다.
우리의 20세기는, 특히 정부수립 후의 20세기는 앙시앵 레짐(구제도)의 시대였다. 프랑스혁명 전의 절대왕정과도 같은 체제와 질서속에 살아왔다. 아직도 남아 있는 모든 폐습과 병폐들은 이 구제도 시대의 산물이다. 이 유물을 그대로 가지고는 21세기를 살아갈 수 없다. 우리에게 21세기는 혁명의 세기라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의 개혁과 구조조정은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틀을 짜는 일이다. 제도나 구조의 변화만으로는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틀을 운용할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식의 개혁에는 한계가 있다.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다. 화석이 된 의식을 개조하기는 몸을 개조하기 보다 더 어렵다. 의식을 바꾸지 못할 사람이라면 그 몸을 통째 바꾸는 수 뿐이다. 20세기적 인간형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
모든 개혁의 실마리는 정치개혁이요 지금 가장 더딘 것이 정치개혁이다. 가장 구시대적인 체질과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대부분의 구 정치인들인데 그 개혁을 그들 자신의 개혁해야 할 의식에 맡겨놓고 있다. 이제 더 기대할 것 없다. 사람을 바꾸어야 한다. 20세기적 정치인들은 퇴장해야 한다. 21세기를 맞는 2000년의 총선거는 매우 의미있고 매우 좋은 기회다.
정치인뿐 아니라 20세기를 맡아온 각 분야의 여러분은 참으로 수고했다. 많은 피와 땀을 흘렸고 많은 업적도 남겼다. 함께 많은 침전물도 남겼으나 그래도 여러분 없이는 오늘의 성과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도 그 시절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러분이라면, 이제 그 여러분의 역할은 끝났다. 휴식할 시간이다. 그 생각, 그 버릇, 그 능력으로는 더 할 일이 없다. 할 일만 없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된다. 여러분과 함께는 새로운 세기가 나아가지 못한다. 20세기의 동력이던 여러분이 바로 21세기의 걸림돌이다. 머뭇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쾌연히 자진 퇴장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기의 대회전차(大回轉車)가 돌아가고 있다. 물레방아를 돌리던 흐름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돌릴 수 없다. 그 흐름 위의 동승자들은 이제 내려야 한다. 배에서 탈출하듯 퇴출해야 한다.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떠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20세기 사람」들은 절망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는 시대의 변화에 도저히 얹힐 수 없는 한물 간 사람이라는 자각으로 희망을 스스로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절망이 나라를 구한다. 그 절망이 있는 사람들의 나라는 희망적이다.
우리는 모두 다시 자문하자. 나는 20세기 사람인가, 21세기 사람인가./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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