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후의 문인화가로 불리는 월전 장우성 화백. 요즘 종로구 팔판동 월전미술관에서 종일 작업에 몰두하며 미수(88세)의 열정을 사르고 있다.주위에서 괜찮냐고, 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하지만 그는 6월 중순께 미수 기념 초대전을 인사동 학고재에서 연다. 94년 호암미술관에서 가졌던 회고전 이후 5년만에 갖는 초대전. 국내 화단에 여든이 넘어서까지 붓을 잡고 있는 화가도 드물 뿐더러, 전람회를 갖는 일은 더더욱 없어 장화백의 미수전은 한국미술사의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다.
『보통 노년의 회고전이라 하면 구작을 소개하는 정도에 머물지만 이번 작품전엔 신작만 선보일 계획입니다. 20~30점 내외의 소품위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람회와 동시에 제2의 화집도 출간할 계획. 81년 고희 기념 화집 이후 18년만에 내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일 그림은 「화산폭발」 「해일」 「황소개구리」 「낚시바늘 문 물고기」등 자연과 현실을 향해 더욱 확장된 정신세계를 담은 작품들이다. 월전하면 떠올렸던 학 까마귀 매화 소나무 같은 소재들이 현대문명의 위기의식으로까지 옮아간 것이다. 간결하고 담백하면서도 주관이 뚜렷한 그의 수묵 속엔 차고 푸른 선비 정신이 서려 있다. 『내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들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개구리의 천적으로 알려졌던 뱀까지 널름 잡아먹는 외국산 황소개구리를 통해 약한 자의 설움을, 한마리 학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며 우는 모습을 통해 고결한 동물의 수난시대를 그렸습니다』
지난 입춘엔 300호 대작 「화산폭발」을 끝냈다. 『몇억년 인고하며 쌓였던 울화 같은 것을 한순간에 꽝하고 폭발한 느낌』이라는 장화백은 『사물을 똑같이 묘사하는 게 예술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그가 문인화에 한평생 열정을 바쳐 온 이유도 사물의 내용은 요점만 나타내고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동양적인 그림」이 바로 문인화라는 것이다.
월전에 대한 평가엔 시·서·화를 섭렵한 유일한 작가라는 사실도 빠뜨릴 수 없다. 이번 전시회에도 그는 「한벽원의 사계」등 자신이 직접 지은 한글로 된 노래, 한시 등 작품을 선보인다.
벗이던 소설가 고 김동리씨가 「학」으로 표현했던 선비 작가도 노년의 외로움이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함께 잔을 기울였던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고, 또 병석에 누워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됐습니다. 송성용은 가고, 김기창김충현 이유태는 작업도, 외출도 못하는 상태죠』 자신이 하루종일 붓을 놓지 못하는 것은 적막함을 잊기 위함일 지 모른다고 했다.
송영주기자 yjsong@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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