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과 정신의 두 향기가 만났다. 김지하(58)와 황지우(47). 70년대 이후 정치적 압제에 의한 고통 속에서 자신만의 사상을 다듬어온 김씨와, 80년대 이후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요즘 새 시집 「어느 흐린 날 나는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로 시의 참맛을 보여주고 있는 황씨, 두 선후배 시인의 드문 만남이다.『요즈음 세계적으로 정신적 공황 아니야? IMF가 물질적 공황과 함께 정신적 공황도 가져왔다고. 지(智)도 없고 사상도 없고… 사회주의 몰락, 민중민족운동 쇠퇴 그리고 한때 들어왔던 포스트모더니즘까지도 쇠퇴하고 없다구. 주사파 한총련 다 사라졌고 주체사상도 없어』(김지하) 『그래 새로운 사상의 흐름을 찾아서 오늘 법문 들으러 왔습니다(웃음)』(황지우)
두 사람의 대담은 계간 「실천문학」의 주선으로 지난 연말 김씨의 일산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계기는 84년 김지하씨가 소설가 이문구 황석영 송기원, 지리학자 최창조, 연출가 임진택, 영화감독 장선우씨 등과 함께 시작했다가 중단됐던 사상기행의 재출발이었다. 이 기행은 바로 김씨의 생명사상의 계기가 됐던 것. 황지우씨는 이번 대담과 함께 김씨가 계획했던 기행의 여정을 자신이 다시 밟았고 그 내용은 「김지하의 사상기행」(가제)이란 책으로 3월중 출간될 예정이다. 금주 발간되는 계간 「실천문학」봄호에는 「혼돈시대의 줏대 세우기」라는 제목으로 그 내용이 일부 소개된다.
둘의 대화는 모든 이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우리 정신의 공황상태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했다. 단군신화의 곰 토템에서 출발해 동학 증산사상 등 우리 정신의 맥을 씨줄로 하고, 기독교와 사회주의, 인터넷 시대의 글로벌라이제이션 문제를 날줄로 해서 둘의 대화는 고금의 사상을 종횡하며 이어져갔다.
『신채호 선생의 아와 비아의 투쟁, 북한의 주체사상에서의 주체는 다 오늘날에는 폭이 좁은 주체입니다. 오늘날에는 개방적 주체로서 타인과 대화하는 주체, 집단적 주체로서 정립되기 이전의 한 개인 단위로서의 주체, 지구인으로서의 주체, 우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영성적 주체, 이 여러 가지가 다 포함된 주체이어야 합니다』. 김씨는 우리 문화는 이렇게 줏대를 세운 주체들의 접화군생이 되어야 한다며 그것이 자신의 생명운동과 예술의 본질이자 목표라고 덧붙였다. 그 방법은 『동도서기가 아닌 동도동기, 우리의 사상을 구심점으로 서구의 사상을 대통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특히 이번 대담에서 80년대 이후 겪었던 자신의 10여년간의 정신의 아픔을 고백하기도 해 관심을 모았다. 황씨는 「나는 김지하를 생각할 때마다 횔더린이 떠오른다」고 자신이 옛적 썼던 글을 떠올리며 『이번 대담에서 만난 김씨의 사상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점화된 광기의 진리가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joha@hankookilbo.co.kr
>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