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그분들이 걸어온 간단치 않은 삶의 역정과 자식을 향한 사랑을 기억하십니까』.방송작가 허윤정(38·여)씨가 던지는 질문이다. 사업실패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아버지가 96년 12월 타계했을 때만 해도 그 역시 이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늘 곁에 있었지만 타인처럼 모르고 지냈던 존재가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어 얻은 「늦둥이」 남동생만을 유난히 편애했던 아버지. 하나뿐인 딸에겐 잔정도 주지 않았던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가족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5년여의 긴 투병생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게 전부였다.
KBS TV 휴먼 다큐프로「사람과 사람」「이것이 인생이다」등을 집필해온 허씨는 『남들 이야기만 쓸 게 아니라 우리 가족사도 한번 정리해보자』는 생각에서 뒤늦게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오래된 일기장과 빛바랜 사진첩을 뒤적이고, 먼 친척까지 찾아다니며 인터뷰도 했다. 아버지의 삶을 취재하다보니 가족사를 단행본으로 엮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모든 이의 삶은 그 자체로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소중한 교훈도 얻었다. 허씨는 내친김에 지난해 11월 무역회사에 다니던 남동생 지웅(30), 동생의 대학후배 심광웅(27), 사촌동생 이재준(30·프리랜서 사진작가)씨 등과 함께 「도서출판 기록문화」라는 조그만 회사를 차렸다. 평범한 사람들의 가족사를 자서전 형식으로 복원해주는 신종 출판대행업체가 탄생한 것이다.
간판을 내건 뒤 알음알음으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해 「일감」이 제법 쌓였다. 남편이 과로사한 30대 후반의 한 여성은 10년 남짓한 결혼생활을 책으로 남기고 싶다며 신혼시절 일기장 등 관련자료를 차곡차곡 챙겨 보내왔다. 지난해말 정년퇴직한 어느 노교수는 자신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진학을 포기한 채 생업전선에 나서야 했던 친형의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상담을 진행중이다.
가족사를 단행본으로 완성하는 데는 길어야 두달. 의뢰인 상담→가족 인터뷰 및 취재→초고완성→수정보완 등의 과정을 거쳐 출간된 책은 개인 또는 가족의 소장용이 원칙이지만 의뢰인이 원할 경우 계약에 의해 서점 보급도 가능하다. 비용은 문집형으로 한부만 출판할 경우 290만(96쪽)∼590만원(304쪽). 기록문화는 앞으로 가족을 주제로 한 무크지도 발간하고 인터넷에 홈페이지도 띄울 계획이다.
아버지의 삶이 책으로 엮어지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에게 선물로 주겠다는 허씨는 『가족사 기록작업이 갈수록 인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되찾아주고 세대간 유대와 화합을 일궈내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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