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공존」을 향한 DJ노믹스 원년의 개혁실험은 일단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비록 시행과정에서 「비(非)시장적 방식으로 시장경제를 만들려한다」 「경기부양논리가 구조조정원칙을 구축(驅逐)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개혁을 향한 발걸음은 쉼없이 진행됐다.1년만에 외환위기와 마이너스성장 및 투자부적격(정크본드)상태를 졸업한 것도 「개혁과 경기의 반비례」 통념을 깨고 오히려 구조조정 과제를 착실히 추진한 덕분이었다.
▦금융개혁 경제의 혈맥인 금융이 곪아있는 한 결코 국민경제는 건강할 수 없었다. 이를 위해선 「금융기관 불사(不死)」신화를 깨야했고 결국 5개 은행을 비롯, 60개 금융기관(신협제외)이 문을 닫았으며 합병과 해외매각이 줄을 이었다. 60조원의 국민세금을 쏟아부어 은행의 부실을 청소해준 대가로, 거의 모든 경영진과 4만명에 달하는 은행원들을 퇴출시켰다.
극심한 신용경색과 금융시장 혼란, 신(新)관치논란등 대가도 치렀지만 4대 개혁과제중 가장 모범적이었다는 평가다. 「하드웨어」 변화를 끝낸 금융개혁은 이제 관행과 제도, 즉 「소프트웨어」 개혁을 향해 가고 있다.
▦재벌개혁 재벌의 철옹성을 깨지 못하는 한 구조조정은 처음부터 무의미했다. 지난 1년은 어떻게든 선단을 해체하려는 정부와 시간벌기·상황논리로 현상유지를 꾀하던 재벌의 힘겨루기 양상이었다.
비록 「잔챙이」란 비아냥에도 불구, 5대 재벌 계열사가 퇴출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공권력 남용」이란 비판과 재벌들의 사활을 건 저항속에서도 자동차 반도체 전자등 핵심산업의 「빅딜」은 차분히 진행중이다. 하지만 속도는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더욱이 「빅딜」이 재벌개혁의 전부로 치부되는 문제점을 남겼다.
▦노동개혁 근로자계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출범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정부였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노사정위원회」라는 절묘한 아이디어로 근로자들의 고통분담동참을 이끌어냈고 정리해고 파견근로자등 경제계의 오랜 숙제들을 일괄 해결했다. 현대자동차 파업 위기도 무사히 넘겨 80년대말 민주화이래 처음으로 산업평화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좀처럼 보상이 따르지 않는 고통분담요구, 사회안정을 위협할 수준으로 늘어나는 실업자, 노사정위원회의 와해 위기등 노동개혁의 여건은 갈수록 힘들고 어려워지고 있다.
▦공공개혁 가장 개혁이 더딘 분야. 19개 공기업과 그 자회사에서 1만6,000여명이 옷을 벗었고 민영화, 조직개혁등 나름대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금융·기업·노동부문이 받은 고통의 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부도 인력진입의 문호를 열고, 계약·연봉제를 도입하는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민간부문에 떳떳이 추가적 고통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의 고통부담엔 소극적이다. 곧 단행될 정부조직 개편도 공공개혁의 일환. 그러나 정부기능과 의식의 변화 없이 권한만 이동하는 것이라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성철기자 sclee@hankookilbo.co.kr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