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삼승판사 "판사는 칼도 없고 지갑도..." 고별사
1999/02/19(금) 20:36
『판사에게는 칼도 없고, 지갑도 없습니다. 단지 공정한 판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판사는 칼을 가진 사람이나 지갑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삼승(梁三承) 대법원장 비서실장(고법부장판사)은 19일 이종기(李宗基·47)변호사 수임비리 사건에 연루돼 사표를 제출하면서 동료 판사들에게 법복을 벗는 소회가 담긴 편지를 남겼다. 그는 이 편지에서 「공정한 판단자」로서 높은 도덕성을 지키지 못했던 뒤늦은 후회를 완곡하게 표현했다.
그는 『사법부가 한참 어려운 시기에 혼자 부담을 벗어던지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는 사법부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동료들에게 사법부의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양실장은 『판사생활의 끝이 이런 시나리오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사표제출을 결정하기까지 괴로웠던 일단의 심경을 드러낸 뒤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평소 애송하던 시로 대변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겠어요. 어떤 희생이 따를지 따져보지 않겠어요. 그것이 잘한 일인지 생각하지 않겠어요.…』
이날 양실장의 편지를 받아 본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안타까워하는 빛을 감추지 못했다. 판사들은 『양실장은 합리적이고 치우침 없는 성품으로 위·아래로 부터 모두 신망을 얻었다』며 『청렴하기로 이름난 부친 양회경(梁會卿)전 대법관의 뒤를 이어 2대(代) 대법관이 될 재목으로 손꼽혔는데…』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양 실장은 92년 서울 형사지법 부장 시절 무죄 선고가 내려졌음에도 석방에 제한을 둔 형사소송법의 단서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위헌제청신청을 내 위헌결정을 받아내는 등 인권보호에도 앞장서 왔다.
/이진동기자 jaydlee@hankookilbo.co.kr
양삼승판사의 '법원을 떠나면서...'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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