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제복과 사복
1999/02/19(금) 17:28
사회가 제복시대로 복귀하는 듯하다. 82년 1월 군사정부의 교복자율화 조치로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은 근대교육의 여명기부터 입기 시작한 교복을 일제히 벗어 던졌다. 학생에게 교복은 복종과 획일화의 상징이자, 일제의 잔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얼마 뒤 교복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더니 3년 뒤엔 교복착용 보완조치가 내려졌고, 교복을 입는 학교가 서서히 늘어났다.
■교복착용 학교는 91년에 74%에 이르렀고 이제는 교복을 입지 않는 중·고생을 찾기 힘들게 됐다. 근래의 생활한복 붐은 학교에까지 미쳐 부산 가야고에서는 봄학기부터 개량한복을 입기로 했다. 지난 7일 강원 홍성군 민족사관학교에서는 첫 졸업생 7명이 옛날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차림으로 졸업식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교복의 형태는 다양하고 편해졌고 색채도 밝아졌다. 더 중요한 것은 교복이 강요된 제복으로서가 아니라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의 합의에 따라 착용 여부가 결정됐다는 점이다. 나름대로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경험한 셈이다. 이는 학생과 우리 사회의 현상만도 아니다. 개신교의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소속 목사들도 최근 천주교 신부처럼 제복을 입기로 해서 「로만 칼라」 형태를 놓고 가벼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뉴욕의 공립초등학교는 오는 가을학기부터 학생의 교복착용을 의무화했다.
■법무부는 18일 앞으로 미결수가 법정과 청문회 등 외부에 나갈 때는 사복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에게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는 것은 법치의 기본인데, 우리는 지금껏 이에 무감각했다. 학생의 제복으로의 복귀는 일종의 학습이었다. 역으로 미결수가 사복을 입는 것은 인권 차원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제복은 학생과 성직자에게 본분에 충실할 것을 기대하고, 미결수의 사복은 「유죄」라는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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