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산업스파이
1999/02/13(토) 18:37
서울 강남의 룸 살롱. 모 그룹 최고경영진들이 모여 중요한 경영기밀을 논의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오간 내용은 즉시 외국 산업스파이에게 넘어간다. 매수된 술집 종업원이 방에 도청장치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동전화 대리점 직원이 돈을 받고 특정 기업의 통화내용을 녹음해 산업스파이에게 넘겨준다. 지워버린 컴퓨터 파일이 복원돼 정보가 스파이 손에 들어가기도 한다.
■얼마전 국가정보원이 밝힌 산업기밀 유출 실태다. 외국영화나 추리소설등에서 접해왔던 산업스파이 문제가 마침내 우리에게도 현실로 다가왔다. 국가정보원은 IMF체제 진입후 해외자본 유치와 국내외 기업간 인수·합병(M&A), 빅딜, 경영 컨설팅 등이 활발해지면서 산업스파이가 우리 주위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고 발표했다. 어느새 이런 상태까지 왔을까 하는 놀라움이 앞선다.
■산업스파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만큼 좋은 「먹이」는 드물 것이다. 국내기업들은 IMF사태로 보안관리조직이 더욱 취약해졌으며, 첨단 기술인력은 실직등의 불안감으로 스카우트 제의나 불법적인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상황이다. 이점을 노려 국내진출 대형 다국적 기업들은 마케팅전략과 생산기술 노하우등을 수집하기 위해 경영컨설팅, 인력스카우트, 연구사업 공동참여, 해커활동은 물론이고 외국 사설 정보업체까지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는 세계적 현상이다. 냉전시대에 목숨을 건 첩보전을 벌였던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전직 스파이들이 함께 손잡고 기업정보 장사를 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또 미 연방수사국(FBI)과 미 상업회의소는 외국의 산업스파이를 척결하기 위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데올로기 자리를 경제가 차지한 탈냉전 시대에는 정보가 곧 안보고 국력인데 우리는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다. 설 연휴기간에 빈 사무실을 산업스파이가 노리고 있다면 명절 분위기를 해치는 너무 심한 말인가.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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