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사면 복권 건의안의 의미
1999/02/12(금) 07:41
국민회의가 11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 건의한 「국민의 정부 출범1주년 특별사면·복권안」은 「희망과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있다. 정파 계층에 따른 대립에 종지부를 찍고, 과거 냉전체제의 어두운 유산으로 남아있는 이데올로기 희생자 등 역사의 퇴적물들을 씻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것이다.
희망과 화해의 메시지는 사면·복권의 중심단어만은 아니다. 김대통령이 21일의 「국민과의 대화」, 24일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밝힐 향후 국정운영의 중심 기조도 희망과 화해가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면·복권안을 비롯 국정운영의 기조가 희망과 화해로 설정된 배경에는 최근의 극단적인 정국대립, 노사현장의 동요가 큰 영향을 미쳤다. 여권 핵심부는 야당의 거친 저항, 상도동의 반발, 민노총의 노사정탈퇴 위협, 기득권세력의 미묘한 기류를 보면서 집권 2년의 국정운영 방향을 놓고 심각한 논의를 거듭했다.
특히 전혀 근거없는 유언비어가 지역감정과 맞물려 증폭되는 현실에 여권 핵심부의 충격은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논의에서 일부 여권 핵심인사들은 『누가 나라를 망쳤고, 누가 나라를 살리려고 애를 쓰느냐』면서 강공을 택하자는 입장이었다. 더욱이 검찰의 항명파동이 발생했을 때는 『국가기강 확립, 공권력의 권위 확보를 위해서는 「힘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강경론도 나왔다. 지금도 여권내 상당수 인사들은 『양보는 누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여전히 힘있는 정국운영을 요구한다. 그러나 여권 핵심부의 다수론은 화해였다.
아무리 여권이 옳다해도 정쟁에만 매몰돼있는 한 결국 최종적인 부담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다.
그 결과,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화합의 정치를 해야한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그 실천적 표현이 대대적인 사면·복권이었다. 사면복권의 구체적 내용들은 사회 각 분야의 화해를 도모하고 있다. 29년 이상의 초장기수 17명의 석방은 인권과 남북화해의 상징적 조치가 될 것이며 노동사건 관련자들의 사면·복권은 흔들리는 노사현장을 안정시키는 예방조치가 될 수 있다.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선거사범도 과감히 사면대상에 포함시켜 재기의 기회를 준 점도 눈에 띈다.
경제사범 중에서도 정치적 희생의 소지가 있다든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오랜 수감자들은 사면복권의 혜택을 받게했다. 이런 구체적 내용의 최종 지향점은 모두 화해와 미래에 맞춰져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사면복권안에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와 황병태(黃秉泰)씨 등 민주계인사들이 포함돼있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현철씨처럼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경우는 사면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형이 확정된 구여권 인사나 민주계 인사들은 국민회의 건의안에 없다고해서 최종적인 사면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고려가 필요한 대상자는 김대통령의 몫으로 남아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와함께 여권이 현 정부를 향한 김영삼전대통령의 거친 언행을 「도가 지나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치인들의 사면 자체가 아직 결론이 나지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여권 국정운영의 큰 흐름이 화해와 미래로 가닥을 잡은 이상 사면복권의 최종그림 역시 「큰 정치」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영성기자 leeys@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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