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병용] 차분히 준비해야
1999/02/10(수) 20:03
- 부처간 협의.학계와 조율등 미진… '깜짝쇼' 우려
우리나라에는 국어문자정책 발표만 있었지 실천이 없었다. 정부는 48년 광복이후 한글 전용_한자 혼용(단독표기)_한글 전용_한자 병기(괄호안 표기) 순으로 네 차례 국어문자정책을 바꿨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어떤 정책을 시행하든 정부의 실천적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국어학계를 중심으로 「고독한」 운동이 펼쳐지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형국이었다. 공문서 한자 병기 추진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은 것도 이런 「경험」때문으로 보인다.
더욱이 한글정책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의 준비 부족은 우려를 자아낸다. 9일 문화부의 방침 발표 이전 부처간 사전 협의나 한글정책 수립기구와의 사전조율, 실질적 연구 모두 미진했다.
발표 하루 전인 8일 열린 국어심의회에서는 한자 병용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문화부장관의 자문기구인 국어심의회는 사실상 국어정책을 결정해 온 기구.
8일 국어심의회에 참석했던 한 학자는 『정식회의도 아니었고, 의견이 엇갈려 한자 병용 문제는 차후 논의하기로 했다』며 문화부의 성급한 발표를 비판했다.
국립국어연구원 관계자는 『한글 전용이든 한자 병기든 장단점이 있다』며 『어느 쪽을 선택하든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교육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어도 한자 병용을 실시하려면 교육적 효과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고, 이를 토대로 한 여론수렴, 여론에 바탕한 사회적 합의와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학자인 이종덕(李種德·46·서울과학고 국어교사 )씨는 『우리가 쓰는 한자는 간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 관광객에게는 도움이 안된다』며 『차라리 일본 관광객이 많이 가는 곳에는 일어병기, 중국 관광객이 많이 가는 곳에는 간자체 병기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김기식(金起式)정책실장은 『한자 병용은 장점도 있지만 정보화 시대에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게 할 우려가 있다』며 『병기대상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6년 국어교과서에 한자를 혼용했던 65~69년 한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국어사전을 찾기 전에 자전을 찾아야 했다.
과거의 사례를 볼 때 국어학계의 소모적인 논쟁도 문제다. 비생산적인 대립과 갈등보다는 서로의 주장에 대해 이해하려는 자세와 주의주장에 대한 과학적이고 실체적 연구에 바탕한 논쟁이 필요하다.
/서사봉기자 sesi@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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