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회견번복] 막후거래설 대두
1999/02/09(화) 18:26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기자회견 번복 해프닝을 둘러싸고 뒷공론이 무성하다. 우선가는 관심사는 번복의 진짜 배경이다. 호사가들은 여권과의 막후 거래설을 말한다. 기자회견 사실이 알려진 뒤 여권이 각종 채널을 가동, 김전대통령 주변을 설득·회유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8일밤의 상도동 만찬모임은 기자회견과는 무관하게 원래 예정됐던 것이어서 여권의 안테나에 미리 포착돼 있었다. 전임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에 대한 사전접촉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몇몇은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권인사들과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변요소일 뿐이었다. 현 여권은 김전대통령과 직접 선을 댈만한 통로를 확보하고 있지 않다. 양자간의 상황인식 차가 워낙 커 그럴 형편도 못 된다. 경고건 선물이건 김전대통령에게 내밀만한 이렇다할 카드도 없었다.
김전대통령은 저녁모임에 참석한 참모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연기」결정을 내렸다. 참석자들은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최소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취임 1주년은 지나야 하지 않느냐』는 논지로 회견을 만류했다. 김전대통령은 처음에는 완강하게 회견강행 방침을 고수했으나 5시간의 마라톤 설득 끝에 참모들의 뜻을 수용했다. 이상은 참석자들이 입을 맞춘듯 전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어떤 부분에서 김대통령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움직였나는 것이다. 상도동 대변인격인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은 『참모들이 미리 짜고 와서 말렸다면 안 받아들였겠지만 개별적으로 극력 말리니 안 들어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한가지로 김대통령이 결심을 바꾸었을 것 같지는 않다. 식언(食言)이 가져올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번복결정을 내렸을 때는 회견강행에서 오는 손해가 더 크다는 주판을 놓았다고 봐야 한다. 정태수(鄭泰守)전한보총회장의 추가답변서가 별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최후의 카드에 다름아닌 기자회견을 해버리면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는 꼴이 된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또 이미 기자회견을 한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거두었으므로 향후 여권의 움직임을 봐가며 대응수위를 조절해야 할 필요성도 느꼈음직 하다.
어쨌거나 김전대통령의 돌출행보는 따가운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중론이다. 최측근조차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급작스런 기자회견 결정과 돌연한 번복은 저간의 사정이 무엇이었건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대단히 진중하지 못한 행동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대국민 충격을 볼모로 여러가지 계산을 한 흔적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도덕적으로도 온당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홍희곤기자 hghong@hankookilbo.co.kr
>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