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몽니' 부릴 땐가
1999/02/09(화) 17:44
김영삼 전대통령이 9일 오전에 갖기로 예정했던 기자회견을 일단 무기연기했다. 전날 환란청문회 증인출석을 요구받고 불편한 심기를 등반으로 달래며 하산길에 내린 결정을 뒤늦게 달려온 전 청와대 참모들의 만류로 번복했다고 한다. 그가 회견에서 밝힐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현정부에 결코 우호적인 내용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김영삼씨의 회견연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행스럽다. 우선 현시국은 여야가 접점 없이 대치하고 있는 살얼음판 정국이다. 여당은 고집스럽게 단독청문회를 강행하고 있고 야당은 장외로 나가 여권의 「속 좁은」 정치의 실상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만약 전직 대통령이 현정부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고 「몽니」를 부리려 한다면 그 파장은 자못 심각할 것이다. 마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가뜩이나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횡행하는 판에 그의 발언이 경우에 따라서는 폭한같은 위력을 나타낼수도 있다. 물론 전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현정부의 처사에 불만스러운 점도 있을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여권의 단독청문회가 말 그대로 정책청문회가 아니라 자신과 지난 정부에 흠집을 내려는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심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국가통수권자를 지낸 원로가 정국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을 뻔히 알면서 불만을 터뜨리려 했다면 이는 결코 사려깊은 처사라 할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김영삼씨가 참모들의 얘기를 경청해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꾼 점을 그래서 평가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크게 우려하는 점은 그의 회견이 자칫 전·현직대통령간의 갈등양상으로 비쳐질 가능성이다. 두 사람의 전면전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겨우 환란의 어둡고 긴 터널의 출구를 찾았다 싶은데, 전·현직 대통령간의 갈등이 회생기미의 우리 경제의 숨통을 옥죈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환란에 책임있는 김 전대통령측은 수습에 신명을 바치고 있는 새 정부에 감사의 성원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새 정부도 지난날의 과오를 들춰내 탓하기 보다는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김 전대통령측은 회견의 취소가 아니라 연기임을 강조하고 있어 언제 불씨가 되살아날지 모른다. 김영삼씨의 회견이 공생이 아니라 공멸을 노림수로 하고 있다는 예측이 우리를 불안케 한다. 김영삼씨에겐 전직 국가원수다운 처신을, 정부엔 상생(相生)의 정치를 해 줄 것을 거듭 당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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