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제] 야 '도입' 여 '거부' 정권 바뀌어도 되풀이
1999/02/07(일) 17:08
특별검사제는 실효성여부를 떠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을 위한 유력한 장치로 정치권에서 논의가 되어왔지만 아직껏 한번도 도입된 적은 없다. 특별검사제와 비슷한 제도가 헌정사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4·19혁명직후 「부정선거관련자 처벌법」에 따라 변호사와 현직 검사들로 구성된 「특별검찰부」가 생긴 것이다. 또 성격은 판이하지만 5·16군사쿠데타 이후 「혁명검찰부」도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등장했다.
이후 부천성고문사건,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등 시국사건에서 간간히 특별검사제 도입문제가 논의됐지만 「탁상공론」수준을 벋어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입법화가 거론된 것은 95년 말 당시 김영삼대통령이 「5·18특별법」을 제정,「역사바로잡기」에 나서면서 부터이다.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와 민주당,재야등은 연대해 특별법제정과 함께 특별검사제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12·12와 5·18사건을 불기소처분한 검찰에게 다시 역사재판을 맡길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여당인 신한국당이 강력히 반대하고 관련자들의 공소시효가 얼마남지 않자 야당은 특검제를 양보하고 특별법만 통과시켰다.
이후 특검제는 정치적 사건만 터지면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문민정부 당시 권력형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야당은 특검제 도입을 주장했다. 결국 야당인 국민회의는 96년 특별검사제와 비리조사처설치등을 골자로 한 부패방지법안을 만들어 법사위에 제출했지만 여당인 신한국당의 반대로 상정 조차 못했다.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의 정권교체 과정에서 특검제는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지난해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특별검사제의 도입을
「100대과제」중 하나로 선정한 것. 하지만 정권교체는 특검제 요구 주장의 「공수(攻守)교체」였을뿐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국민회의는 새로 추진한 「부패방지법」에 특별검사제 도입을 보류,사실상 포기선언을 했다. 야당시절 특검제 입법의 설계자였던 박상천법무부장관이 『특검제는 위헌적 요소가 있고,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일 때 나온 것』이라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고 국민회의측에서도 법무부에 동조하는 의견이 세(勢)를 얻었다. 오히려 「북풍」등의 사건을 거치면서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의 주도아래 지난해 12월 한나라당에서 전정권시절 국민회의가 요구했던 것과 유사한 「특별검사제 임명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논 상태다.
지난해 7월 국민회의는 논란끝에 특검제를 도입하는 대신 「대통령」직속의 공직비리전담 수사기구를 두는 방향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이마저도 검찰의 반발로 무산되는 듯 했다. 하지만 잇따른 「정치검찰」시비와 대전법조비리 사건의 여파등으로 박장관은 지난 3일 「공직자비리조사처」를 「검찰총장」 산하에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특별검사제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었다.
/이태희기자taehee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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