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역사속으로 지는 '중동의 해결사'
1999/02/06(토) 08:59
46년간 요르단을 통치해 온 중동의 최장수 지도자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중동의 뛰어난 조정가이자 국내에서는 존경받는 군주였다. 현재 세계에서 그보다 오래 집권한 지도자는 지난달 혁명 50주년을 맞은 피델 카스트로 정도다.
장기집권에도 그에계는 독재자라는 말이 붙지 않는다. 그의 절대권력을 비판하는 국민도 거의 없다.
중동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인 인구 460만명의 소국 요르단을 이끌어 온 그는 「줄타기의 명수」 「탁월한 정치감각의 소유자」 「천(千)의 얼굴」 등의 수식어가 설명하듯 외교적 노련함과 정치적 센스로 안팎으로 적을 만들지 않았다. 18세에 권좌에 올라 반세기가 가깝도록 요르단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같은 스타일과 지도력 덕분이다.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내세운 그의 외교전략은 곧 요르단의 국방력 때문이었다. 이는 군사력이 약한 요르단으로선 생존술이었다. 걸프전 때 평화를 이유로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에 불참한 것도 후일 군사강국 이라크의 보복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화해를 주선하며 이스라엘과 수교한 것도 미국의 경제지원을 얻기위한 전략이었다.
지난 해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미국 와이밀스에서 평화협상을 할 때 와중임에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초청으로 현장을 방문, 양국 지도자들에게 『당신 아이들을 위해 평화를 이루라』고 설득, 중재 역할에 성공했다.
1935년 하시마이트 왕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후세인은 53년 정신병에 시달리던 아버지를 대신해 3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불사조이기도 했다. 할아버지 압둘라 왕이 암살될 때 바로 옆에 있다가 총에 맞았으나 목에 걸고 있던 메달 때문에 살아남았다. 그후 수차례 쿠데타 기도와 시리아와의 전투, 독살 기도 등에서도 목숨을 지켰다.
후세인은 네번째 부인인 아랍 출신의 미국인 누르(48)왕비와의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두명의 아내와 이혼 후 세번째 맞이한 알리아 왕비가 헬기추락사고로 숨지는 비운을 겪었으나 78년 누르와 결혼, 2남2녀를 낳았다. 팬암항공사 회장의 딸로 프린스턴대 출신인 누르는 요르단 왕립항공사에서 일하던 중 후세인을 만났다. /이상원기자 sw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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