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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은행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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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은행장의 편지

입력
1999.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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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은행장의 편지

1999/02/04(목) 17:37

일전에 KBS의 사극 「왕과 비」에서는 왕위를 노리며 사람을 끌어모으던 수양대군이 이를 견제하려는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등과 「분경(奔競)금지」문제를 놓고 격돌하는 과정을 다룬 적이 있다. 분경이란 벼슬을 얻기위해 힘있는 세도가들을 분주히 찾아다닌다는 뜻으로, 요즘말로 하자면 인사청탁 또는 줄대기다. 조선시대에는 분경금지법을 만들어 친척이 아닌 자가 고관집에 드나들면 볼기 100대를 때린뒤 귀양을 보내도록 했으니 분경이 얼마나 극성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지난해 8월 비은행 출신으로 주택은행장에 발탁된 뒤 혁신적인 경영을 펼쳐 주목을 받고 있는 김정태(金正泰)행장이 최근 「인사청탁과의 전쟁」을 다짐하는 E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내 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김행장은 인사이동이 잦아지면서 정·관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청탁이 쇄도하고 있다면서 『권세와 지위를 들먹이며 극히 자연스러운 태도로 청탁을 해오는 이들의 행태를 보면 거부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우리 사회는 정부든 민간기업이든 어느 조직이건간에 연줄을 동원한 인사청탁이 만연해 있다. TK, PK, MK 하는 말은 연줄인사가 없었다면 생겨날 수 없다. 요즘도 공무원 인사 뒤에는 으레 연줄을 통한 배경풀이가 가장 설득력을 얻는다. 현정부도 투명하고 공정한 인사를 강조하고 있지만 『어느 정부부처 인사는 누가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공무원사회 주변에서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연줄인사의 폐해는 김행장의 편지속에 잘 지적돼 있다. 『실력보다 권력이라는 사고방식이 횡행하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실력을 쌓아야 할 시간에 연줄을 만드느라 바빴으며, 줄이 없는 사람들은 위화감 속에서 의욕을 상실하고 있다…』그는 또 「부당한 방식으로 얻은 지위는 유지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분경금지법을 부활해야 할 모양이다. /배정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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