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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지자체의 신엽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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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지자체의 신엽관주의

입력
1999.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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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지자체의 신엽관주의

1999/02/04(목) 17:11

일찍이 조선왕조의 명신이었던 율곡 이이선생은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근본으로서 육조계(六條啓)를 제시하였다.

그 중 첫째가 어진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을 임용하는 것이다(任能賢). 또 『나라를 다스림에는 요체가 있는 것이니 임금이 위에서 손을 안 움직이고 노고를 들이지 않아도 다스려지는 것은 현자(賢者)가 존위하며 능자(能者)가 임직하여 각각 정성과 재질을 다하는 까닭에 연유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올바른 인사의 충원이 국가나 지방행정의 근본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최근 사법고시의 개혁과 합격자수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행정고시나 지방행정고시 등에 있어서는 별다른 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이제 국가행정과 지방행정의 내일을 책임질 유능하고 성실한 공직지망생에게 문호를 활짝 개방하기 위해 인사정책의 발상전환이 요망된다.

96년 지방공무원 5급직의 임용현황을 살펴보면 2,201명이 새로 임용되었는데6급에서 승진한 공무원이 전체의 94%(2,075명)나 되었고 지방행정고시 등을 통해 신규임용된 공무원은 전체의 6%, 126명에 불과했다.

97년의 경우도 비슷했다. 5급 임용공무원 1,716명가운데 6급 승진 케이스가 93.5%(1,601명)나 됐고 신규임용은 6.5%(112명)에 그쳤다.

반면 중앙부처의 경우 지자체보다는 신규임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96년5급 국가직공무원 임용자 1,207명 가운데 승진이 전체의 75%(907명), 신규임용이 25%(310명)였다.

97년의 경우도 5급승진 1,482명중 자체승진 74%(1,096명), 신규임용 26%(386명)로 적정비율의 외부수혈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같은 수치를 비교해 보면, 지방자치단체 5급공무원 임용은 승진이 압도적이어서 대학졸업자가 지방행정고등고시를 통해 신규임용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원천적으로 제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지방자치단체들이 국가기관이나 민간경제부문과는 달리 젊고 유능한 인재의 충원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신규채용기피는 단기적으로는 내부승진공무원의 사기진작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정보화시대에 지방행정이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중간관리층 인적자원의 결핍을 가져와 민간부문 및 중앙정부와의 지적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다.

또한 연공서열에 의한 내부승진을 일반화하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인사충원의 개방화 정책에 크게 역행하는 것이다.

승진시험제도마저 거의 폐지된 상태에서 신규채용의 기회마저 꽁꽁 묶어 놓은 폐쇄형 인사정책이 뿌리내린다면, 오로지 단체장에 대한 충성심 여하에 따라서 승진이 좌우되는 소위 「신엽관주의(New Spoils System)」가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단체장의 신임을 얻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4년마다 실시되는 단체장 선거에서 어떻게든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헌법 제7조에 명시된 「공무원의 신분보장과 정치적인 중립성」이 본질적으로 훼손될 우려가 있다. 공무원은 국민에게 봉사하고 책임지는 것이지 단체장에 봉사하고 책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관료조직은 외부로부터 신선한 피가 수혈되지 않으면 경직화해 국민에 대한 서비스의 질과 양이 뒷걸음질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지금같은 꽉막힌 폐쇄형 인사정책 아래서 지방자치단체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의 인사당국은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 임용정책이 개방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3월에 실시될 지방행정고시를 통해 선발할 인력은 20명(중앙정부는 200명)에 불과하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바른 국가정책의 근본은 올바른 인사정책에서 비롯되며, 올바른 인사정책은 올바른 인사의 충원에 있으며, 올바른 인사의 충원은 개방형의 신규채용과 그 유연성에 있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 박응격·朴應擊교수·한양대 행정문제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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