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건이란]
1999/02/04(목) 17:53
97년 1월 5조원대의 은행부채를 안고 쓰러진 한보철강에 대한 금융특혜 의혹으로 시작된 「한보사건」은 노동법 날치기파동과 함께 김영삼(金泳三)정권의 종말을 재촉한 결정적 계기였다.
모래위에 세운 「한보왕국」에 대한 천문학적 규모의 은행대출을 가능케했던 「몸통」을 밝히라는 국민적 요구에 따라 즉각 수사에 나선 검찰은 당시 정태수(鄭泰守)그룹회장과 홍인길(洪仁吉)청와대총무수석, 신한국당의 황병태(黃秉泰) 정재철(鄭在哲)의원, 국민회의 권노갑(權魯甲)의원, 김우석(金佑錫)내무부장관등을 수뢰죄로 구속시켰다. 하지만 『깃털만 손댔다』는 비난이 끊이지않자 검찰은 정회장의 아들 정보근(鄭譜根)씨와 가까웠던 김현철(金賢哲)씨를 소환수사, 현직대통령의 아들이 검찰수사를 받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검찰수사는 김씨의 한보관련 의혹을 밝혀내지 못하고 『결국 면죄부만 안겼다』는 거센 여론의 비판에 직면, 집권세력은 야당의 국회 청문회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97년 4월 열린 청문회에서 야당은 한보자금이 여당의 정치자금, 특히 92년 대선자금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점을 끈질기게 물고늘어졌지만 정회장이 시종 「모르쇠」로 일관, 의혹만 부풀렸다.
권혁범기자 hbkwon@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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