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올봄 일찍 온다" 미국판 경칩
1999/02/03(수) 17:03
『올해는 봄이 일찍 찾아 오겠습니다』 어슬렁거리는 그라운드호그(북미산 다람쥐과의 일종)를 유심히 살피던 빌 디레이씨가 외쳤다. 그는 훌륭한 일기예보관인 그라운드호그 「필」이 이같이 예언했다고 말했다. 필의 「봄소식」은 뉴스를 타고 미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미국에서 성촉절(聖燭節)인 2일은 그라운드호그가 동면에서 깨어나 나오는 「그라운드호그 데이」로도 알려진 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는 우리의 경칩과 비슷하다.
이날 미 언론의 관심은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산골마을인 펑수토니에 집중된다. 「필」의 고향이다. 가랑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도 취재진과 관광객 2만 5,000여명이 운집했다.
「필」의 예언 방식은 단순하다. 그가 처음 나와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 봄은 최소한 6주 후에나 온다는 판단이다. 그러면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썰매와 스키를 타고 놀 수 있는 겨울이 남은 때문이다.
올해는 필이 그림자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 관리인 디레이씨의 주장이다. 봄이 일찍 온다는 뜻이다. 그라운드호그는 날이 흐려 자신의 그림자가 지지 않으면 봄이 오는 징조로 보고 굴 속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고 땅 위에 머문다고 한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다. 겨울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그저 시작한 놀이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전국적인 행사가 된 것뿐이다. 「필」은 부활절의 토끼, 추수감사절의 칠면조같이 상징적 동물이 됐다. 유명세를 타는 「펑수토니의 필」은 TV토크쇼에도 나가고 백악관에도 초청받는 명사다.
/뉴욕=윤석민특파원 yunsuk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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