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파동] 검사회의 무슨얘기 했나
1999/02/03(수) 18:17
검찰사상 처음으로 열린 전국 평검사회의에서는 과연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2일 오후부터 장장 11시간에 걸친 마라톤회의 결과에 대한 공식발표문은 『검사들은 총장을 중심으로 일치단결, 신뢰받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는 내용이 고작이어서 궁금증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특히 회의막바지에서 수뇌부를 포함, 간부들을 배제한 한시간동안 평검사 들은 「수뇌부 용퇴」문제를 둘러싸고 강경·온건론으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강경론자들은 『수뇌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조건없이 용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온건론 입장에 선 검사들은 『수뇌부에 대한 오해가 풀리지 않았느냐』며 『수뇌부 즉각 퇴진은 검찰조직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같은 시각 회의장 밖 복도에서는 이원성(李源性)대검차장과 대검 부장(검사장)들이 긴장감 속에서 회의장 분위기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참석자들이 전한 11시간동안의 주제별 발언내용과 회의분위기를 정리한다.
◆수뇌부 퇴진
서울지검의 한 검사가 『조직 안정을 기한뒤 수뇌부의 용기있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연판장 내용을 전달하면서 물꼬를 텄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수뇌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든 수뇌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뒤따랐고 직설적으로 『수뇌부는 조건없이 용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이원성(李源性)대검차장이 『나도 포함되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단호한 답변이 나와 일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그럼에도 『수뇌부가 먼저 나갔더라면 후배검사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았고 검찰이 이처럼 망신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수뇌부를 향한 질타는 이어졌다. 그러나 『수뇌부가 물러난다고 이번 일이 해결될 일이냐』는 반대론도 고개를 들었다. 『수뇌부가 바뀐다고 해서 우리가 저질렀던 원죄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국민신뢰가 일거에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평검사 한명은 『그래도 수뇌부는 용퇴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대전법조비리사건처리
일선 검사들은 주로 『여론에만 떠밀려 대전법조비리 사건 처리를 너무 가혹하게 했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아무도 과거 관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데 존경받는 선배들이 떡값이나 전별금때문에 여론재판을 당해 반강제로 옷을 벗는 모습을 보고 자괴감과 굴욕감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내쫓는다면 어느검사인들 검찰조직에 애착을 갖겠는가』라는 발언이 이어졌다. 반면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떡값이나 전별금이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았다. 잘못된 관행이 명백한 만큼 앞으로 받아선 안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정치적 중립
『국회 529호실 사건에 왜 검찰이 끼어 들어 망신을 당하느냐. 여당 보호를 위한 수사태도가 아닌가』라는 신랄한 비판에 이어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심재륜(沈在淪)고검장이 지적한 바에 따르면 수뇌부가 YS와 김현철(金賢哲)씨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는데 적절한 진위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수뇌부를 향한 직격탄도 날아들었다. 『검찰의 정치 성향은 인사에 비롯된다며 차제에 정치인 줄대기가 없어지도록 인사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차제에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발언도 나왔다. 반면 『정치적 중립은 검찰 수뇌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목소리와 함께 『검찰의 자성도 이뤄져야 하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권도 각성해야 한다』는 정치권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도 새나왔다.
◆인사문제
검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연 학연에 따른 인사 관행이 검찰 조직을 병들게 했다며 검찰내에는 인사문제 때문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고 질타했다. 『왜 정권이 바뀌면서 호남출신이 부상하느냐』 『과거에는 TK, PK가 득세한 것이 사실 아니냐』등 민감한 문제를 거론한뒤 『법무부 장관은 어차피 정치인이므로 검사 인사권을 법무부에서 가져와 인사의 독립을 확보할 때 정치권으로부터도 독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언론문제
『검찰 수뇌부가 언론에 너무 휘둘리는 것 아니냐. 앞으로 기자들의 검사실 출입을 막아햐 하고, 검사들의 개별접촉을 금지해야 한다』『이번 서명사건도 언론이 너무 부풀렸다』언론에 대한 불만도 폭발했다.
◆기타
『심고검장의 돌출성명이후 이대검차장의 즉각적인 반박은 감정적 처리로 수뇌부로서 취할 입장이 아니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밖에 정치적 중립을 위해 총장 선거제도와 총장 청문회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이 등장했다. 또 일정직급의 고위공무원 구속시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제도도 철폐해야 한다는 구체적 대안도 나왔다. 차제에 특별검사제도 도입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진동기자 jayd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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