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기록문화 미개국
1999/02/04(목) 11:25
우리는 세계최초의 기록문화 유산을 가진 민족이다. 유네스코는 97년 10월 훈민정음과 함께 조선왕조실록을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인류 공동의 재산으로 등록했다. 413책 1,866권이나 되는 기록의 방대함 때문이 아니다. 조선왕조 500년간 전분야의 기록이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기술된 사료적 가치를 산 것이다. 절대군주 시대에 그런 문화를 가졌다는 사실과 기록을 보전해온 노력이 높이 평가됐음은 물론이다.[■실록은 추상같은 역사인식을 가진 젊은 사관들이 나라일과 왕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적은 사초를 근거로 한 것이다. 반드시 통치자가 죽은 후에 편찬하고, 이해 관계자의 열람을 금지하는 철칙을 지켰기에 왕의 실정과 비정까지 낱낱이 기록될 수 있었다. 이렇게 작성된 기록은 춘추관과 충주 전주 성주의 사고에 보관하다가 임진왜란후에는 오대산 태백산 내장산 묘향산 마니산 적상산(무주) 등에 사고를 지어 보관했다.
■이런 전통과 유산을 가진 나라가 기록문화 미개국이 되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때 재임중 통치사료를 모두 사저로 가져가고, 안기부가 전정권 관련자료를 파기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 엊그제 경제청문회 증인으로 불려나온 박운서 전 상공부차관은 4박스 분량의 삼성자동차 허가관련 서류중 2건을 빼고는 모두 파기했다고 증언했다. 서류를 정리하라는 김철수 당시 장관의 지시를 직원이 잘못 알아들었다는 설명이었다.
■모든 공문서는 보존연한이 있고, 대통령 결재문건은 반드시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규정으로는 안된다는 여론에 따라 정부는 공공기관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지난 29일 공포된 기록물관리법은 기록보존 의무화, 무단파기·은닉·유출·훼손행위의 형사처벌, 일정기간 경과문서의 공개 등을 규정하고 있다. 건국 51년 만에 생긴 이 법으로 기록문화 선진국의 영광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문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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