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판장 파동] 향후 사태 어떻게
1999/02/02(화) 17:38
검찰사상 초유의 검사 집단 움직임은 2일 대검이 전국 차장검사 및 검사회의를 열어 총장퇴진과 인사·제도 개혁 요구를 공론화하고 박상천(朴相千)법무부장관이 「선수습 후 조직정비」 원칙을 천명함에 따라 일단 휴지기를 맞았다. 소장검사들이 집단 행동을 결행하기 직전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검찰 간부들의 적극적인 진화로, 수면하에서 꿈틀거리던 불만과 개혁요구를 공개 토론장으로 끌어내는 선에서 「한시적 봉합」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행동이 심재륜(沈在淪)대구고검장의 파문을 진화하는 도중 터진 것인데다 검사들이 내부에 응축된 정치적 중립과 총장퇴진 요구를 집단서명이라는 형식을 통해 표출하려 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함부로 예측하기 힘들다.
대검과 법무부 수뇌부가 나서 검사들의 「의견개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번 사태의 잠재적 폭발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과 법무부 수뇌부가 검찰총장 임명 청문회, 검찰총장의 실질적 인사권 행사 등 제도적 측면에서 검사들의 요구사항을 적극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당장 현안으로 불거진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의 거취와 이번 사태로 와해 직전에 놓인 검찰조직의 기강을 어떤 방식으로 복원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수뇌부와 일선 검사들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정권의 기강확립」과도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수뇌부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검찰의 지휘권이 일시에 붕괴되는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개혁에 저항하는 보수 기득권층의 「반개혁 정서」가 이번 사태의 저변에 깔려있다는 청와대의 시각도 깔려있다. 따라서 검찰총장의 퇴진 문제는 검찰내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권의 공황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게 상층부의 입장이다.
박장관이 이 날 집단행동의 동기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기강을 생명으로 하는 검사들이 민중운동적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힌 것은 수뇌부의 입장을 함축하고 있다. 반면 수뇌부의 퇴진만이 이번 사퇴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소장검사들의 태도도 쉽게 누그러질 기세가 아니다. 「검찰 조직보호」를 최우선시하는 직업생리상 표면적으론 잠재워질 수 있겠지만 현 수뇌부 체제가 유지되는 한 개혁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 젊은 검사들의 판단이다. 따라서 언제든지 제2의 집단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아래로부터의 「집단 항명」으로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진 김총장이 앞으로 검찰 조직을 원활하게 이끌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현수뇌부가 이번 사태를 수습한 후 거취를 표명하는 수순을 밟음으로써 퇴진의 명분과 조직의 기강확립, 검사들의 요구수용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는 모양새를 취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김승일기자 ksi8101@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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