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이재환씨의 경우
1999/02/02(화) 17:29
1987년 7월20일 뉴욕의 케네디공항에서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재환(25)씨는 동부 명문 MIT경영대학원 박사과정의 평범한 유학생이었다. 약 3개월간의 긴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는 대신 아버지의 권유로 5월22일부터 7월17일까지 단체여행객의 일원으로 유럽을 여행했다. 미국으로 돌아온지 사흘만인 이날 이씨는 외숙모의 전송을 받으며 다시 두번째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행선지는 빈이었다. 첫번째 미스터리는 왜, 무슨 이유로 사흘만에 다시 빈으로 갔을까 이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20일째인 그해 8월8일 밤 9시, 북한 중앙방송은 이씨가 제3국을 통해 「의거입북」했다고 발표했다. 오스트리아는 남북한 공관이 대치하는 외교적 전략 요충지다. 중앙방송이 말한 제3국이란 아마도 오스트리아를 지칭하는 듯하다. 북한에 납치 억류됐던 신상옥 최은희부부가 탈출한 곳도 바로 빈이다. 역으로 북한이 이씨를 납치한 곳도 빈일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가 검찰요직(대검차장)을 거쳐 집권당 국회의원으로 유복한 가정의 장남인 그가 사상적으로 동요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북한의 「의거입북」 운운하는 억지가 두번째 미스터리다. 그로부터 1년4개월후인 88년 12월29일, 필자는 판문점 국회회담 실무접촉을 취재하고 있었다. 평소 안면있던 북측기자가 다가와 이재환씨 소식을 넌지시 흘렸다. 그는 『이박사(재환씨)가 지난달 결혼했고 다국적 기업 횡포에 관해 많은 연구와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사실은 30일자 한국일보 지방판부터 특종 보도됐다.
■다시 이씨 근황이 알려진 것은 지난 1월31일이다. 그는 탈북하려다 붙잡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이 탈북주민 신문과정에서 밝혀낸 사실이다. 정치범 수용소엔 이씨말고도 신원확인된 월북 및 납북인사가 20여명이다. 지금 북한의 악명높은 수용소에서는 20만명이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미스터리극이 연출되고 있다. /노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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