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판장 파동] "정치중립.수뇌부 퇴진" 난상토론
1999/02/02(화) 17:38
일부 소장검사들이 「검찰 수뇌부의 퇴진」내용을 담은 연판장을 돌리는 등 집단행동 조짐을 보인 가운데 대검이 2일 전국 검사회의를 긴급 소집, 의견수렴에 나서 회의내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날 회의는 일선 검사들의 수뇌부에 대한 불만에서부터 인사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제한없는 난상토론형식으로 진행됐다. 회의에는 전국 차장검사 21명과 대검 검찰연구관, 전국 각 지검에서 온 평검사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에 앞서 이원성(李源性)대검차장은 『이 모임은 결코 형식적으로 끝날 자리가 아니다』고 강조한뒤 『모든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해 검찰 조직 발전을 위한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안을 내달라』고 당부했다.
검사들은 먼저 『검찰 내부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여론에만 떠밀려 대전법조비리 사건 처리를 너무 가혹하게 한 것 아니었느냐』며 수뇌부를 향한 불만을 쏟아냈다. 검찰 수뇌부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더라면 후배검사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 뿐더러 검찰 조직이 이렇게까지 내몰리는 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또 떡값 전별금 관행에서 자유로울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는가』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검찰 수뇌부가 어떤 형태로든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거취표명이 있어야 한다는 일선 검사들의 의견도 전달됐다.
이에 대해 일부 검사들은 『수뇌부가 퇴진하는 것 만으로 국민이 과연 납득했겠느냐』며 『후임자가 들어섰을 경우 재조사 요구가 있을 게 불보듯 뻔하고 그러면 똑같은 결과가 초래됐을 것』이라는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또 『철저한 수사를 요구한 여론이 워낙 거세기도 했지만 언론에서 「이종기 리스트」를 갖고 있는 마당에 그냥 덮어뒀다가 나중에 불거져 나오면 검찰로서는 더 큰 위기를 맞게 됐을 것』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검찰 수뇌부는 『총장이 6개월 여 남은 임기에 절대 연연하지 않는다』며 『일이 해결되고 나면 전체 검사들의 의견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뇌부의 거취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검사들은 또 심재륜(沈在淪)고검장의 「권력의 시녀론」 「정치검찰론」을 수뇌부가 일과성 해프닝으로 넘길 것이 아니라 차제에 이같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치적 중립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법무부에서 예산 인사권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일각에서는 시민단체등이 주장하는 검찰총장의 인사청문회 도입을 주장했으나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뇌부는 『이번 사태가 분명히 검찰의 정치적 중립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며 『정치적 중립화를 위한 좋은 의견이 나오면 실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사들은 또 검찰의 고질적인 지연 학연에 따른 인사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권 교체기마다 특정지역 또는 특정고교출신이 요직을 독점하는 경향을 지적하고 시정을 위한 공정한 인사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검찰 수뇌부는 『이번주 말 또는 다음주 초에 예정된 정기인사에서는 적성과 능력을 고려하되 지연 학연에 따른 인사 관행을 철저히 혁파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동기자 jayd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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