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도 잘할 수 있다 (송영주 주간한국부차장)
1999/02/01(월) 17:10
작년 늦봄 어느날, 회사가 구조조정으로 한창 술렁이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사무실 한 선배 책상에 놓여 있는 하얀 종이를 보게 되었다. 「나는 A를 할 수 있고, B도 잘 할 수 있다. C도 난 잘 한다…」. 하얀 A4 용지를 가득 메우며 깨알같이 써 내려간 기다란 메모였다.
자세히 읽어볼 순 없었지만, 언뜻 눈에 띄는 내용만으로도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적은 목록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당시 난 그 메모를 흘끗 지나치며 당신이 앉아 있는 자리가 얼마나 불안했길래 이런 걸 다 작성했을까, 아무래도 너무 큰 충격 끝에 혹시 이 선배가 이상해진 건 아닐까 내색은 못한 채 걱정스러워했다.
그러나 며칠 뒤 또 다른 선배가 비슷한 목록을 만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워낙 밝은 성품으로, 웬만한 외부 충격엔 끄떡도 않을 것 같은 선배인지라 난 감히 용기를 내어 물었다.『무엇하세요?』
「지능목록(Intelligence Profile)」을 만드는 것이라 했다. IMF사태 충격속 에서 당시 직장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 「익숙한 것과의 결별」(구본형 지음)에서 저자가 권했던 「자기혁명 방법」중 하나였다.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남이 잘한다고 칭찬하는 것들을 적어 「지능목록」을 만들고, 다음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만들어 비교해 보라 제안했다. 이 두 개의 목록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연결시킬 때 비로소 「빛나는 새가 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난 선배들의 이상한 행동에 일단 안심하면서도, 사실 이 일이 불안한 시대를 극복하는데 무슨 효과가 있으랴 의아해 했다. 그러나 새해들어 달력을 또 한장 넘기며 그 생소했던 지능목록에 대해 조금씩 이해를 더하고 있다.
잘 못하는 일에 매달리거나, 하기 싫지만 잘하는 일이어서 평생 매여 있고 또 능력은 되도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사람이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흔들리는 시기에, 혹시 오르막에서 내리막으로 떨어져, 자신의 인생을 한번쯤 뒤돌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능목록을 작성해보라 권한다. 적어도 하나쯤 분명히 남들보다 탁월한 「나의 장점」을 찾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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