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단체 '제5의 권부'
1999/01/30(토) 19:22
「제5의 권부(權府)」 시민단체를 잡아라.
지난해 대기업 주총에서 「소액주주들의 반란」을 주도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해온 시민단체에 최근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시민단체와 현안문제를 상의하고 프로젝트를 제의하는 등 유화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환경련은 최근 모기업으로부터 3억원 규모의 수자원관리 연구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고심 끝에 거절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3억원은 큰 돈이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환경련 내부의 결론에 사양했다.
환경련에는 또 올초부터 「동강댐지키기운동」과 관련,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들이 잇따라 방문하고 있다. 환경련 관계자는 『정부기관에서 정책논의를 위해 시민단체를 직접 찾아오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소액주주운동을 펼쳤던 참여연대 장하성(張夏成)경제민주화위원장도 최근까지 해당기업에서 각종 인맥을 통해 사외이사를 맡아달라는 등 「로비」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올들어 행정자치부 내에 민간운동지원 예산 배분을 주기능으로 하는 민관협력과를 설치하는 등 시민운동과의 접촉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정치권도 마찬가지.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총재는 최근 유종성(柳鍾星)경실련 사무총장, 서영훈(徐英勳)신사회공동선운동대표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초청, 오찬을 함께 하며 협력강화를 다짐했다.
정부, 기업의 관심이 쏠리면서 시민단체 스스로가 순수성과 도덕성을 잃지않도록 몸가짐을 바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말 민간운동지원금 150억원을 책정하는 등 지원을 대폭 늘림에 따라 유명무실한 시민단체가 난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경찰청은 지난 26일 유령 환경단체를 설립, 정부나 기업 등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속여 20여명으로부터 1억3,000여만원을 가로챈 김모(57)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조희연(曺喜日+公)성공회대 교수는 『취약한 재정여건을 고려,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완전히 뿌리칠 수는 없어도 자율성과 자발성이 생명인 시민단체에서 외부지원 비율이 50%를 넘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몇몇 단체에서는 이미 내부지침을 정하는 등 시민단체 본연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환경련은 기관지 「함께 사는 길」에 환경관련 기업의 광고를 받지않기로 했고 참여연대는 정부나 기업 등의 재정지원을 가급적 사양하고 정부기구 참여를 자제키로 했다. 경실련도 최근 자체적으로 조직개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천호 chpark@hankookilbo.co.kr 김동국기자dkki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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