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천년충’
1999/01/28(목) 18:11
개방, 개혁정책으로 경제발전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에도 이에 걸맞게 신조어가 많이 탄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컴퓨터시대를 반영하는 「흑객」(黑客)과 「천년충」(千年蟲)이다. 흑객은 바로 해커를 뜻한다. 해커는 남의 컴퓨터에 몰래 들어가 자료를 빼가거나 분탕질을 치는 자를 말하니, 속이 검은 손님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우리가 별 저항 없이 받아들여 쓰고 있는 용어인 해커의 뜻이 잘 드러나 있다.
■「천년충」은 요즘 한참 전세계가 그 대책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2000년문제인 밀레니엄 버그(Y2K)를 가리킨다. 두자리 숫자만을 인식하게 된 컴퓨터가 2000년을 자칫 1900년으로 잘못 인식하는 것을 한 마리 벌레의 준동에 비유한 것은 재미있는 표현이다. 문제는 벌레의 준동이 자칫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는 것인데, 영어용어인 밀레니엄 버그의 뜻이 잘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미지근하기 만하다.
■얼마전 감사원이 발표한 전력, 에너지, 통신, 상하수도, 운송,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정부의 2000년문제 대응실태 감사결과를 보면 한심하기까지 하다. 원전의 경우 보유설비가 Y2K문제의 영향이 있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정부 각 부처는 지난해 8월 Y2K해결 진척도를 국무회의에 허위·과장 보고까지 했다고 한다. Y2K해결 전문인력을 5일만에 양성했다는 사실이 정부의 Y2K문제에 대한 인식부족을 말해준다.
■정부는 천년충이 모든 것을 갉아 먹어 혼란을 일으키기 전에 민간기업등과 손을 잡고 실태 파악부터 착수해야 한다. Y2K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대상이 얼마나 되는지 조차 모르면서 대책 운운 해봐야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팩시밀리, 공작로봇, 방범시스템은 물론 가전제품과 의료기기에 들어있는 마이크로칩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천년충이 우리생활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법적 제도적 기술적으로 완전히 방제한 후 2000년 새시대를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병일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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