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해적과 장보고
1999/01/26(화) 17:34
남중국해와 말라카해협에 해적이 들끓는다는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이 해역에 출몰하던 해적은 주로 베트남 보트피플을 노리는 좀도둑 수준이었다. 그러나 중국개방후 기관총 로켓포 등으로 무장한 고속 해적선이 등장하더니, 최근에는 지나가는 배의 화물명세와 수량 목적지까지 알고 덤비는 정보화 해적까지 나타났다. 탈취할 화물을 유령회사 이름으로 선매하는 장물처분 조직을 가진 무리도 있다.
■범행수법도 지능적이다. 조난을 당한 것처럼 신호탄을 쏘아올려 지나가던 배가 다가오면 총부리를 들이대거나, 단속선을 가장하기도 한다. 지난 13일 중국 당국에 붙잡힌 중국인 7명은 세관 감시선을 위장해 파나마 선적 2만톤급 화물선을 덮쳤다. 세관원 복장을 한 이들은 화물선에 오르자마자 총을 휘두르며 선원 23명을 한곳에 모아 쏘아 죽이고, 시체를 바다에 던져버린 뒤 1,250만 달러 상당의 원광석을 탈취해 달아났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해적사건은 연간 250건 안팎인데, 작은 어선들을 상대로 한 좀도둑성까지 치면 몇백 몇천건이 될지 모른다. 이중 50% 정도가 남중국해 일대에서 일어나 우리나라의 피해도 크다. 통영수협 소속 어선들만 해도 그 해역에서 매달 10여건씩 피해를 당한다. 지난해 가을의 텐유호사건은 아직 실종선원 행방조차 오리무중이고, 얼마전 중국 근해에서 어획물과 장비까지 빼앗긴 용금호 선장은 입이 찢긴채 돌아왔다.
■그런데도 선주협회등에 주의를 촉구하는 것 말고는 당국의 특별한 대책이 없다. 해양수산부가 생겼는데 마찬가지다. 해양수산부는 지난주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올해 1,300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장보고(張保皐) 기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안지대까지 침입해 신라 소년들을 잡아다 노예로 팔아먹던 중국 해적들을 소탕한 해상왕을 기리는 사업도 필요하지만, 배들을 지켜줄 순시선 한척이 더 급하지 않을까. /문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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