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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내탓이오'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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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내탓이오'를 듣고 싶다

입력
1999.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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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내탓이오'를 듣고 싶다

1999/01/25(월) 18:37

이기창 여론독자부장

90년대 들어 한동안 천주교 신도단체인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내탓이오」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내탓이오 내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의 기도」를 토대로 한 이 운동은 우리 사회의 신뢰회복을 겨냥한 것으로 불신과 잘못의 씨앗이 남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자기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운동은 비록 천주교회 내부 행사로 머물렀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역시 천주교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금 국회에서는 「IMF환란조사특위」의 주도로 경제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18일 막이 오른 청문회는 재경부 등 9개 기관의 보고에 이어 25일 이경식(李經植)전 한은총재, 홍재형(洪在馨)전 경제부총리 등 증인 4명과 임창열(林昌烈)전 경제부총리(현 경기지사) 등 참고인 9명을 소환, 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정책에 대한 증인신문을 벌였다.

그러나 청문회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싸늘하다. 시원하기는 커녕 그나마 아물어가던 상처를 덧나게 한다는 여론이다.

민주개혁국민연합, 경실련, 정치개혁시민연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역시 청문회가 97년12월 밀어닥친 경제위기의 총체적 원인규명을 바라는 국민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혹평한다.

특히 경제위기의 책임을 지고 있는 재정경제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은 저마다 상대방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네탓이오」의 답변으로 일관, 국민의 분노를 샀다.

책임을 진 기관이나 정책결정자들의 「내탓이오」라는 고백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의원들의 질의도 원인규명을 겨냥한 정책적 접근보다 유도성 질문이나 한건주의식 폭로에 그쳐 아쉬움을 주고 있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이런 제안들을 하고 있다. 증인이나 참고인들의 진술의 차이를 밝히기 위한 대질신문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 환란의 주요배경인 재벌의 부실화와 차입경영의 문제점 확인을 위해 재벌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며, 금융위기의 본질규명 차원에서 부실대출조사를 위한 소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보고서를 부실하게 작성하거나 의도적으로 누락 보고한 경우를 찾아내 작성책임자를 문책하고 중립적 전문가들로 구성된 거국적 경제위기 원인규명과 조사위원회 구성을 촉구한다. 귀담아 들을 제안이다.

청문회에서의 「네탓이오」공방을 보면서 한 외신기사가 떠올라 씁쓸하게 웃은 적이 있다.

지난해말 미 하원의 클린턴대통령에 대한 탄핵심의가 진행되던 때 보도된 이 기사는 『한동안 유행하던 팝송에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미안해라는 말이 가장 하기 힘든 말인 것 같소)」가 있는데 공직자들의 말장난을 꼬집고 있다』는 내용으로 기억된다.

이 팝송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 국회의 청문회 풍경을 노래하고 있는 것같기만 하다.

국민의 바람은 아주 소박하다. 밝은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대다수 국민의 작은 소망을 한순간에 앗아간 IMF체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당시 정책결정자들은 왜 우리 경제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진실규명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련자들의 거짓없는 참회를 기다리고 있다.

청문회는 내달 11일까지 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정책, 기아사태, 종금사 인·허가비리, 한보사건 등 5개 의제별로 모두 48명의 증인과 45명의 참고인에 대한 신문을 벌이고 13일 활동을 마무리한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증언(2월8일)과 차남 현철(賢哲)씨의 증인신문(2월4, 5일)도 일정에 포함돼 있지만 이들의 청문회 출석은 불투명하다.

지금까지 결과로 미뤄볼 때 남은 기간에 과연 국민의 아픔을 쓰다듬어줄 진실규명이 이뤄질지 의문이다. 국민들은 단 한명이라도 좋으니 「내탓이오」라는 고백을 듣고 싶어한다.

증인과 참고인 모두 또다시 국민을 배신해선 안된다. 철저한 참회를 바탕으로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참회하는 이에게 돌팔매질할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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