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을 연다] 정글경제시대 "최고만 살아남는다"
1999/01/24(일) 19:54
삼성전자는 요즘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소니사가 최근 TV에서 캠코더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자제품을 만들어내는 대규모 생산라인을 삼성전자 수원공장 인근에 세우고 본격적인 한국시장 공략에 나섰기 때문이다.
소니는 한국 현지공장을 차린 지 6개월여만에 TV의 경우 시장점유율이 10%를 넘어서는 등 국내시장에서 쌓아온 삼성전자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소니가 현지생산으로 가격을 대폭 낮췄을 뿐 아니라, 품질과 디자인이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어 머지않아 한국시장을 석권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에맞서 임금 등 생산비용이 아직은 낮은 중국 등으로 일부 생산기지를 옮겨 일본시장 역공(逆攻)에 나서고 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아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머지않아 눈앞에 펼쳐질 경제전쟁의 현장이다. 민족과 언어를 기초로 한 정치적 국경은 21세기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경제적 국경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21세기는 국경없는 정글경제시대
국내 상황을 둘러보아도 국경없는 경제전쟁은 이제 현실이다. 2000년에는 수입선다변화제도가 폐지돼 그동안 수입이 금지됐던 일본산 제품들이 물밀듯 밀려들어오게 된다. 그후 토요다승용차가 국내시장을 석권하고, 소니TV가 안방대감노릇을 해도 이를 물리적으로 차단할 방도가 없다.
한·미, 한·일간에 협의가 진행중인 투자자유협정은 더욱 가공할 만하다. 투자자유협정이 체결되면 세계최대 자동차업체인 미국 GM사와 일본의 토요다가 국내에 현지공장을 짓고 생산과 판매활동을 할 경우 현대자동차와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
생산활동, 금융은 물론 법적용에서도 현대자동차는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 현대자동차 역시 미국과 일본에서 현지업체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된다.
투자자유협정은 한·미, 한·일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21세기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이 투자와 무역에서 국경을 없애려는 전략을 중단없이 추진하고 있고, 유럽연합(EU) 역시 통일된 유럽의 힘을 앞세워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논의단계가 있는 다자간투자자유협정(MAI) 등을 현실화하기에 충분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왕윤종(王允鍾)박사는 『미국은 감당하기 어려운 무역적자(지난해 2,400억달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21세기에는 시장개방압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 확실하다』면서 『이는 경제국경을 무너뜨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달러, 일본은 소니, 독일은 벤츠, 한국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선택은 둘중 하나다. 일찌감치 국경을 열어젖히고 싱가포르와 홍콩식으로 외국 유력기업의 하청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대다수 「주식회사 대한민국」직원들은 이 방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부가가치와 품질을 높이는 길이 선택가능한 생존전략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의치 않다.
미국은 달러, 일본은 소니, 독일은 벤츠, 프랑스는 TGV. 그들 국가의 대표 브랜드들이다. 이들 상품은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10위권의 무역대국이지만, 대표 브랜드는 키우지 못했다. 외국인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는 「김치」마저 외국시장에서는 마케팅에서 일본에 뒤져 일본음식으로 인식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일본의 미쓰비시연구소 등이 그들의 성장경험을 바탕으로 외환위기 이전부터「한국경제의 최대 핸디캡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상품, 기술이 없는 점」이라고 경고했지만, 문어발식 확장만이 지속됐을 뿐이다.
■대표상품 없으면 영원한 3류
한국상품과 기술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더욱 가혹하다. 국제적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은 96년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세계 25위, 기업경영능력은 28위로 평가한 이후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무역협회가 최근 국내 1,000개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대상업체중 80%이상이 품질과 디자인경쟁력에서 선진국에 뒤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촉발한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새로운 밀레니엄시대에 접어들면 자동차업체는 세계적으로 3~5개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분석은 이제 통설이 돼 있다. 철강, 전자, 조선, 유통 등도 세계적으로 손꼽히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우리의 선택은 더욱 자명해지고 있다. /김동영기자 dykim@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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