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론] 정책청문회를 바란다(김영명 한림대교수)
1999/01/22(금) 17:20
지금 국회에서는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이 청문회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참석을 거부하여 여권 단독으로 소집되었다. 한나라당은 청문회 참석을 거부하는 대신 24일 마산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한다.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아니 한국정치에서 언제나 보는 장면의 반복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개탄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흥미마저 별반 없는 것 같다. 필자도 이제 더 이상 현 정치권을 질타하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체념일까? 그런 점이 없다고 할 수는 물론 없다.
그러나 다시 한번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자. 그러지 않으면 울화가 치밀어 못살테니까. 기본적으로 한국의 정치권은 아직도 세련된 의회정치를 꾸려 나갈 수준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선진국 수준의 세련된 협상과 타협과 게임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당초 지나친 기대이다. 물론 안타까운 마음에서 이런 과도한 기대를 하고 질타도 해보지만, 다른 한편 체념할 것은 체념하자.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언제부터 민주주의의 의회정치를 제대로 해보았던가? 불과 10여년이다.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여든 야든 과거의 군사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다. 정권이나 그 주변에서 권력을 맛보던 사람들 아니면 이를 타파하기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이다. 10여년 동안 그들의 행태가 얼마나 바뀔 수 있었겠는가? 제도는 바뀌고 법도 바뀌어도 사람들이 그대로이니 아무리 스스로 바꾸어 보려고 해도 역부족인 것이다.
야당은 정부와 여당이 야당을 사찰하고 국정을 마음대로 끌고나간다고 불만이 가득하여 장외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다. 마산지역에서 집회를 갖는다니 그 근처 사람들과 단합대회를 여는 의미 밖에는 찾아볼 수 없다.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강변해 보았자 유치한 변명에 불과할 것이다. 정치력의 빈곤을 그대로 드러내고 스스로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해 가는 꼴이다. 지역감정이라는 폭탄을 가슴에 가득 안고서.
여권 단독의 청문회는 또 무엇이냐? 10여년 전 우리는 5공 청문회니 광주 청문회니 하는 활기차고 재미있는 청문회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군사정권 하에서 베일에 가려졌던 온갖 압제와 부정과 비리를 밝혀내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고 상당 부분 목적을 달성하였다. 게다가 그것은 비단 모르는 것은캐묻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달성을 자축하는 축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청문회를 중계하는 텔레비전 앞에 모여 들었고 「청문회 스타」들의 속 시원한 질타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청문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러한 목적의 정치행사는 더 이상 생산적인 소득을 끌어낼 수 없고 불필요한 정쟁을 끝없이 이어갈 뿐이다.
단적으로 말해, 김영삼정부의 비리를 캐내겠다고 여권이 매달린다고 치자. 여전히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가만히 있겠는가? 국정마비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치윤리적인 점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비리와 부정을 캐내겠다면 그 기준을 어디에 두고 어느 범위까지 가야 할 것인가? 순수히 도덕적인 면만 따지자면 현 대통령의 과거 정치자금도 명백히 밝혀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순수히 도덕적인 면만 따지자면 현 국회의원들의 대부분이 범법자가 되지 않을까? 어디까지 밝힐 수 있을 것인가?
이 말이 부정과 비리의 책임을 묻지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위선과 세력 다툼이 어우러진 「비리청문회」는 효용도 없고 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정치를 후퇴시킬 뿐이다. 따라서 청문회는 순수한 「정책청문회」가 되어야 한다.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삼고 앞으로 올바른 정책을 펼치는 데 도움을 받자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 섣부른 정치적 의도는 배척되어야 한다. 야당은 장외집회를 그만두고 청문회에 참석하든지 하기 싫거든 다른 방법으로 여권을 공격하라. 아무리 기대 수준을 낮춘다고 해도 한도가 있는 법이다. 여야 모두 더 이상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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