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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출신 장관의 귀거래사] "명예지키려 흙에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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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출신 장관의 귀거래사] "명예지키려 흙에 살리라"

입력
1999.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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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출신 장관의 귀거래사] "명예지키려 흙에 살리라"

1999/01/22(금) 17:37

30여년을 지켜온 명예와 부(富)를 버리고 낙향(落鄕)한 검사 출신 장관의 귀거래사(歸去來辭)가 대전 이종기(李宗基)변호사 수임비리 사건으로 어수선한 법조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문민정부의 마지막 법제처장을 지낸 송종의(宋宗義·58·사시1회)씨. 그는 지난 해 3월 퇴임하자마자 충남 논산군 양촌면에 있는 밤농장으로 돌아갔다. 「검찰의 2인자」인 대검차장을 지낸 송씨는 재조시절 올곧은 인품으로 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워 변호사로 개업할 경우 「전관예우」를 최대로 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법률 기술자」보다 서투른 농군을 택했다.

송씨는 얼마전 서재에 있던 법전을 모두 치워 버렸다. 후학들이 증정한 각종 법률서적도 창고에 들여보냈다. 송씨의 지인들은 『법전을 태워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는데 송씨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밭갈아 먹고 살아가는데 법전은 뭐가 필요합니까. 농부로 살아가는 저에게는 소용없는 책입니다. 말로 버렸다고 버려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미 마음 속에서 지운 지 오랩니다』

송씨는 대검 중수부장 시절 「범죄와의 전쟁」을 지휘하며 폭력조직 「서방파」 두목 김태촌(金泰村)을 구속했고, 93년 서울지검장 재직시에는 정치권과 검찰수뇌부의 거센 압력을 제치고 슬롯머신사건 수사를 성공시킨 「대쪽 검사」다. 백발에다 한학(漢學)에도 밝아 별명이 송도사(宋道士). 95년 교통사고로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을 잃은 뒤 지은 고유문(告由文)은 애통한 부정(父情)을 절절히 표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송씨는 95년 잠시 낙향한 적이 있었다. 그해 9월 후배인 김기수(金起秀·사시2회)당시 서울고검장이 검찰총장에 임명되자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심정으로 자유인으로 돌아간다』며 밤농장으로 돌아갔었다.

그러나 은퇴 1년만인 96년 12월 법제처장에 발탁돼 공직에 복귀했다.

그는 검사 초년시절 강경지청에 근무하면서 국유지를 불하받아 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틈틈이 정성들여 가꾸어온 밤나무가 세월이 지나면서 아름드리가 돼 낙향한 송씨를 맞았다. 그는 『30여년간 법전과 씨름하고 살았지만 법조인으로서의 미련은 없다』며 『농부로 돌아가 청산에서 유유자적하는 생활이 더 없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세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지 못해 가끔 서울에 오르내리며 친구들과 만나기도 한다.

『흉년이면 오히려 밤톨이 굵어지고 인건비도 적게 들어 이익이 나는 역설도 터득하게 됐다』는 송씨는 『밤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웃 조합원들과 밤가공공장 건설을 계획중』이라고 말했다.

후배 검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송씨는 『충고할 입장도 해 줄 말도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그가 대검차장 자리를 물러나면서 한 퇴임사는 연이은 비리사건으로 혼탁한 법조계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경구인 듯하다.

『가면으로서의 권위가 아니라 국민이 달아주는 고귀한 훈장으로서의 검찰 권위를 바로세우고 정의로운 검찰권의 행사로 명예를 지켜야 한다』

/이태희기자 th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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