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논단] 브라질, 다음나라는?(박영철.고려대교수)
1999/01/20(수) 17:54
규모로는 세계에서 여덟번째로 큰 브라질 경제가 금융위기에 몰리면서 남미의 주변국가는 물론 터키, 심지어는 중국까지 브라질 사태의 여파로 도미노가 쓰러지듯 하나 둘 환란의 제물이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세계금융시장은 의외로 냉정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이 동요를 보이지 않는 배경으로는 여러가지 설명이 나오고 있는데 그 하나는 은행을 비롯한 대다수의 금융기관들과 기관투자가들이 작년부터 브라질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만반의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이다. 즉, 브라질의 위기는 너무나 오래 예견되었던 사태였기 때문에 그 결과가 이미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은 국제 금융시장의 큰손들, 특히 투기적으로 자금을 운영하는 자금 매니저들이 동아시아 환란 때와는 달리 외환사태를 기회로 이용하여 과감한 투자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위기로 한국이나 동아시아 국가의 주식·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다시 반등할 것으로 예상하여 이들 증권을 사들여 주가와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안정을 보이는 등, 투기적인 자금운영이 금융시장을 부분적으로나마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제금융시장 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의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IMF와 미국이 브라질의 국가부도를 방관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미국 및 유럽계 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을 안심시켜 그 결과로 국제금융시장이 안정되어 브라질 사태의 여진이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IMF와 미국 재무성이 브라질 구제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정치적·경제적인 병폐가 너무 깊게 자리잡고 있어 IMF의 정책처방과 자금지원만으로는 한국처럼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외환위기로부터 벗어나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많은 전문가들은 브라질이 IMF의 지원을 받아 현상을 유지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라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브라질도 인도네시아에 이어 오랜 기간 불황에 인플레가 겹치는 빈곤의 경제로 뒤처지게 될 것이다. 결국 IMF가 운영하는 중환자실에는 인도네시아, 러시아, 이제는 브라질 등 회복의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중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제금융제도의 문제는 브라질 사태에서 끝나지 않는다. 국제금융시장의 큰손, 작은손들이 전에는 야생동물의 무리처럼 떼를 지어 다니다가 어느 한 나라에서 외환위기의 기미가 감지되면 유사한 문제가 있어 보이는 다른 나라들로부터도 무작정 자금을 회수해 달아나더니 이제는 오히려 몰려다니면서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취약한 경제를 선별적으로 공격하려는 의도마저 보이고 있다. 이미 터키가 넘어갈 것으로 보고 그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가 하면,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등을 다음의 공격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IMF의 중환자가 늘면 늘수록 세계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더 심화할 것임이 분명하다. 어느날 이들 중환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외환위기를 맞게 되면 IMF나 G7은 제대로 손쓸 여유도 없이 세계경제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런 위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G7이나 IMF는 말만하고 있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국제금융제도를 개편하여 안정시킬 것인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와 같이 환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는 나라도 아직은 위기의 위험지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사태가 터지면, 아직은 국제사회의 지원이나 협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스스로 우리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외환 보유고도 어느 정도 쌓고 외국 중앙은행 및 민간 금융기관으로부터 급할 때는 자금을 빌려 쓸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하고, 무엇보다도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여 경제를 튼튼히 하는 등 제2,3의 방어선을 구축하는 상식적인 준비 이외의 별다른 대안이 없다.
박영철 朴英哲·고려대 교수·경제학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