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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온정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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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온정리 풍경

입력
1999.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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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온정리 풍경

1999/01/20(수) 17:27

낮에는 금강산에 오르고 밤에는 선상에서 세미나를 하는 행사가 마련되어 지난주 금강산을 다녀왔다. 금강산은 섬세한 풍경이 모여 장엄한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폭포와 계곡의 기교적이고 아기자기한 풍경까지 얼어붙어 차라리 냉엄했다. 만물상 가는 얼음길에 울리던 발자국 소리, 온정리에서 스친 북한 소년의 음성 등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울리는 듯하다.

■겨울에는 길이 얼어 차가 못다니므로 등산 거리가 길어진다. 만물상까지 왕복 15㎞, 구룡폭포까지 9㎞를 걸어야 하는데 절반은 빙판길이다. 등산화에 미끄럼 방지기구 아이젠을 착용하고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등산길이 고행길인데, 끝에는 노고를 달래줄 기막힌 풍경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은 경탄을 자아내지만, 찻길 옆에 벌 받듯이 부동자세로 서있던 소년병들의 모습은 우울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혹 가다 보이는 여인들은 대부분 웃으며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더해 주는데, 썰매를 타고 귀가하거나 땔나무를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소년들의 반응은 간단하지 않다. 손을 흔드는 아이들도 있고, 『잘 있어라』하고 인사하는 우리에게 『잘 가라, 이 미제(美帝)야』하며 주먹을 휘두르는 아이도 있었다. 집앞에 웅기중기 모여 서성이는 남자들이나 털목도리를 두른 여인, 군인, 소년 등의 표정은 각각이지만 남루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마음이 아팠다.

■금강산 입구 온정리의 논밭까지 황량할 뿐이어서 비감을 더해 주었다. 겨울철 작물인 보리나 밀, 시금치 등 초록색이라곤 찾을 길이 없었다. 비닐 하우스라도 보이면 거기서 무언가 자라고 있으리라고 기대하겠지만, 남쪽 농촌에서는 흔한 비닐 하우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척박해 보이는 온정리 등 북한마을이 비닐 하우스로 뒤덮였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하여 그곳 주민들이 사시사철 그 속에서 초록빛 작물을 희망처럼 키우는 것을 보고 싶었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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