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론] 서울, 역사자취를 살려라(김상태 이대교수)
1999/01/19(화) 17:43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했던 「서울의 옛 모습」사진전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이되었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저렇게 참담한 가난 속에서 우리가 살았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있었는가 하면, 발전된 오늘의 모습을 보면서는 그 급속한 경제발전과 우리민족의 장한 역량에 새삼스러운 경이를 느꼈다. 40년 이상을 서울서 살면서 내가 직접 목도한 것이지만, 서울이 변해도 엄청나게 변했다. 그 옛날의 서울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하늘을 치솟는 건물이 숲을 이루고, 소달구지조차 빠져나가기 어렵던 골목이 사통팔달의 대로로 변했다. 꾀죄죄하던 한복에 봇짐을 지고 가던 저자거리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세련된 양복에 최신의 고급 승용차가 꼬리를 물고 있다. 이제 정히 서울은 국제적 도시다. 서구사람들이 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을 것같다.
그러나 이곳이 과연 조선조 500년의 도읍지가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고궁이 그나마 남아 있길래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다면 서울의 옛 모습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옛 것은 철저히도 허물고 버렸다. 경제적 성장을 반드시 이런 식으로 표현했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그 구질구질하던 옛날의 모습은 외국인에게 보이기 부끄러워 고의로 버리고 파괴한 것은 아닐까?
나는 25년전 처음으로 미국에 도착했을 때의 충격을 기억하고 있다.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재래시장만을 보아 오던 내 눈에 집어들기가 겁이 날 정도로 청결하게 정돈된 그로서리, 곡예를 하는 것처럼 교차한 도로들, 잘 뚫린 프리웨이, 하늘을 찌르는 고층빌딩들, 온갖 문명의 이기들이 잘 갖추어진 주거환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의 감탄을 듣고 그 곳 교수가 하는 말은 미국도 이렇게 된 데는 불과 이삼십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도 이렇게 될 날이 올까 반신반의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한국도 벌써 그런 날이 와 버린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겨우 200여년의 역사를 지녔지만, 한국은 4,000여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사실은 깜빡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이 있다면 동물은 역사가 없는데 비하여 인간은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현대문명속에 살기 위하여 지난 역사를 부정하고 생활의 문화재를 남김없이 허문다는 것이 과연 문화국민으로서 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88년부터 시작한 「세계문화발전 10개년(World Decade for Cultural
Development)계획은 세계의 지성인들에게 숱한 화제를 뿌리며 지난해말로 일단 마감했다. 지난해 4월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정부간 위원회는 지난 활동을 뒤돌아 보면서 앞으로의 전망을 가늠하는 자리였는데 참가국 대표들은 10개년 계획은 종료되나 문화와 발전이라는 목표는 실천개념으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다가올 2000년대를 이끌어 갈 중심이념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2차 세계대전후 거의 모든 나라가 발전이라는 개념을 신주처럼 모셨으나 발전에 어느 정도 성공한 나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서구적 모델의 발전 방법론은 문화의 획일화, 전통문화의 말살, 환경파괴, 기존가치의 상실 등으로 혼란만 야기시키고 상대적 빈곤감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은 경제적 발전의 의미에서 말한 몇 개국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화적 의미에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서울의 재개발은 으레 아파트를 규격품처럼 지어놓는 것, 땅 밑의 문화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를 내는 것이다. 베니스나 암스테르담처럼 400~500년 된 집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5,0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는 겨우 몇 십년 된 규격품의 집에서만 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100년쯤 지난 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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