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출신고와 출신고교
1999/01/16(토) 18:19
문민정부 때의 일이다. 정부고위직 인사에서 자리를 옮긴 한 호남출신 관료는 프로필에서 자신이 호남산(産)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언론사에 통사정한 적이 있다. 현 정부출범후 그는 오히려 더 승진했는데 웬일인지 이 때만큼은 스스로 호남출신임을 공개하고 나섰다.
정권교체 때마다 출신지와 학교가 구설수에 오르지 않은 적은 없다. 관가 뿐 아니라 재계 금융계 학계조차 주도그룹은 정권과 함께 부침했고 이는 엄청난 갈등과 기회비용을 초래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특정고교 인맥문제를 엄중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한국일보가 정부 고위관료와 공기업·은행 경영진의 출신지역·고교 분포를 보도한 이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지연과 학연의 사슬로 꽁꽁묶여 있음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단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중하위직으로 내려가도 결코 덜하지 않다』 『재벌도 특정지역 및 특정고교의 지배현상이 얼마나 심각한데 재계는 왜 다루지 않는냐』는 독자전화가 빗발쳤다. 출신지가 서울로 알려진 한 은행임원은 『본적은 서울이지만 출생지는 충청도이니 다음부터 그렇게 써달라』고 말했다. 호남에서 태어난 뒤 영남서 자란 한 고위인사의 출신지가 호남으로 되어있는데 대해 본인은 싫지 않은 표정인 반면, 해당기관장은 마치 자신이 특정지역을 우대한 것으로 비쳐질까봐 탐탐치않게 여겼다는 후문이다. 출생지역과 학교가 다른 인사는 정권에 따라 향우회와 동문회를 골라나간다는 소문, 「나도 원적은 ○○도」 「처가집이 ○○출신」 「○○고교도 이젠 뭉쳐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학교, 고향을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반대로 학교, 고향을 내세우는 것 역시 우스꽝스런 일이다. 21세기가 바로 코앞인데 이젠 30년 폐습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도 됐다.
이성철 경제부기자 sclee@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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