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야마모토 치에코)
1999/01/15(금) 18:29
오랫동안 근무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저는 「드디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왜 「드디어」라는 말을 쓰냐구요? 사실은 저는 북한의 나남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답니다. 아홉 살 때까지는 집에서 만든 김치를 매일 먹으며 온돌방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한국에서 살던 일본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어를 배울 생각조차 못한 채 살았기에 「드디어」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한국어 공부는 저의 숙제 또는 꼭 해야할 과제였던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간신히 일본으로 돌아온 저는 그 이전의 일들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생각이 달라진 것은 퇴직 몇 년전에 아버지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부터 입니다. 산의 모양들, 집들, 지붕의 선, 버스의 창문을 통해 본 강가에서 빨래하는 풍경 등, 그것들은 저의 뇌리속에 새겨져 있던 고향의 풍경이었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왜 저는 북한에서 태어났는지, 역사적으로는 한일관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왜 저는 그것들을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는지 그 때까지 마음속에 넣어두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저는 태어났던 고향에 한걸음이라도 가까이 가자라고 생각하여 판문점 방문을 서둘렀습니다. 그리고 제 가슴을 무겁게 누른 것은 판문점의 긴장이었습니다. 관광안내원은 이산가족에 관한 일과, 남북통일에 관한 것들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미뤄두었던 나의 숙제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 저는 나이도 능력도 잊은채, 드디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경주벚꽃걷기대회」에도 참가하고, 부산과 우리집에서 홈스테이를 교환하는 등 언제나 친구들과 교류를 깊게 하고 그 테두리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소 500마리와 판문점을 넘어」라는 뉴스도 들려와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시작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저 자신도, 북한에도 갈 수 있고 북한 사람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고 교류를 할 수 있을 때가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축구때에는 더욱 밝고, 더욱 평화로운 바람이 불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여러분은 혹시 미뤄둔 숙제는 없으십니까.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
KOREALINK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