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어른들 웃자고 `아동학대하는 TV'
1999/01/15(금) 18:10
『아이들이 출연하는 요즘 TV 오락프로그램은 거의 범죄수준이다』
최근 몇몇 TV 오락프로에 대한 한양대 김정기(신문방송학)교수의 진단이다. 어린이 인격 무시, 아동학대, 그릇된 교육·가치관 조장 등 범죄행위에 가까운 제작관행이 거의 모든 영·유아, 어린이 출연 프로에서 횡행하고 있다. 아이들마저 재미와 시청률을 위한 「소품」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방송은 어린이의 품성과 정서를 해치는 배역에 출연시켜서는 안된다」는 방송심의규정은 사문화한지 오래다.
9일 오후7시 방송된 SBS 오락프로 「서세원의 좋은세상 만들기」의 한 코너인 「유치원에서 온 편지」. 유치원생이 출연, 목청껏 자신의 주장을 펴는 이 코너에 한 유치원생이 「아버지가 현금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바람에 어머니와 자주 다툰다」는 내용을 말했다. 나이에 비해 「서비스」라는 외래어 발음이 어려운 것은 당연. 하지만 제작진은 「계속 영어가 안됨」이라는 자막을 녹음된 웃음소리와 함께 계속 내보내 아이를 조롱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약과. SBS 「감동! 아이러브아이」는 지난 달 25일 방영된 「안델센 탐험대」코너에서 어머니와 짜고 남매를 일부러 낯선 곳에서 길을 잃게 했다. 남매 나이는 고작 다섯살과 세살. 두려움에 얼굴을 찡그리는 남매에게 피터팬 후크선장으로 분장한 제작진은 『춤을 추면 엄마를 찾아주겠다』며 억지를 부렸다. 「아이는 초능력」코너에서는 우는 아이의 눈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불을 찾게끔 강요했다. 「베이비 올림픽」코너에서는 24개월된 아이들이 철봉 오래 매달리기 게임을 하다 한 아이가 떨어져 울자 진행자들이 박장대소했다.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자막과 함께.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가 매주 방송하는 「김국진의 대단한 대결」도 문제. 10일방영분에서는 김연우(5)양과 개그맨 김국진이 미술작품 500개 외우기에 도전했다. 잔뜩 긴장한 김양이 스튜디오에 출연, 화가와 작품이름을 많이 외우자 제작진은 아무 거리낌없이 「영재」라는 호칭을 붙이며 환호했다. 암기위주 교육의 폐해를 지적해온 방송사가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
김정기교수는 『외국의 경우 아이들의 심리적 충격을 우려, TV 진행자들의 언어사용에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며 『아이들을 이용해 억지웃음을 만드려는 제작진의 방송윤리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여성단체협의회 권수현여성정책부장은 『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의 심리적 충격은 성인이 될 때까지 남아있을 수 있다』며 『이런 프로에 아이를 출연시킨 부모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아동보호차원에서 프로그램 제작시 아동심리학자의 참여를 제안했다. 서울여대 안정임(신문방송학)교수는 『아동학대가 웃음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통념부터 변해야 한다』며 『창의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능력으로 아이를 평가하려는 제작진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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